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새로운 도약의 날개를 달까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 수주에 사활 <br>성능 검증된 'T-50A'로 기선제압 노린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이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은 KAI는 T-50A를 앞세우고 있다. KAI는 이미 검증된 T-50A의 우수한 성능을 무기로 수주전에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KAI는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을 따내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다. 2017년 말이면 그 결과가 나온다.






지난 2016년 11월 19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도널슨 센터 공항에서 T-50A 시제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T-50A는 KAI가 2006년 개발한 T-50을 업그레이드한 기종이다. 미국 공군이 요구한 대화면 시현기(LAD)를 갖춘 조종석과 가상훈련 기능을 추가해 비행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공중급유 장치를 달아 작전 시간도 늘렸다. 이날 비행 현장에는 미 국방부와 공군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KAI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T-50A를 앞세워 미국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교체 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T-50A
APT 사업은 1960년대 생산된 T-38 훈련기를 F-35나 F-22 같은 5세대 전투기 훈련이 가능한 고등훈련기로 교체하는 미 공군의 사업이다. 2017년 3월 제안서를 제출하면 같은 해 12월쯤 업체 선정과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APT 사업은 규모나 예산 측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이다. 입찰에서 승리한 업체는 2022~2032년까지 고등훈련기 350대를 생산해 미 공군에 납품을 하게 된다. 미 공군의 추가 도입물량과 미 해군 주문도 이어질 계획이어서 총 납품량은 1,000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PT 사업 총 예산은 약 38조 원 규모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미국 업체는 물론 비행기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외국 업체들도 앞다퉈 APT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선정될 경우 최대 15년 동안 공장을 가동할 수 있고, 고등훈련기 판매 외에도 30여 년 간 부품 교체와 업그레이드 등 후속 군수지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도입했다’는 점을 앞세워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우방국들을 상대로 추가 판매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지상 시뮬레이터 등 훈련 시스템과 후속 군수지원 체계 전문 업체들까지 가세하며 APT 사업이 달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쟁쟁한 항공기 제작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APT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KAI-록히드마틴’,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미국 노스롭 그루먼-영국 BAE 시스템스’, ‘미국 레이시온-이탈리아 아에로마키’가 그들이다. 이들 중 T-50A를 개발해 시험비행까지 선보인 KAI-록히드마틴이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있다. 보잉-사브는 2017년 초 시험비행을 실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고등훈련기를 개발 중이다. 현재 지상 장비 시험과 활주 시험, 조종사 시뮬레이션 훈련 등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노스롭 그루먼-BAE 시스템스도 고등훈련기를 개발 중이다. 현재는 지상 활주 사진만 공개된 상태다. 레이시온-아에로마키 역시 아에로마키사의 M-346을 일부 개량한 T-100을 제시했지만 실물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T-50A의 기반이 된 T-50은 한국 공군에서 10여년 간쓰이며 전투기 조종사 양성에 큰 공헌을 해왔기 때문에 신뢰도가 매우 높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이라크 등으로 판매되는 등 수출 실적도 적잖이 쌓아왔다. T-50A의 미국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도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은 기존 훈련기를 미 공군이 요구하는 사양으로 변경해 사업 입찰에 참여한다”며 “기존 훈련기를 사양변경 할 경우 개발비 투자가 필요 없고, 이미 많은 비행기록도 가지고 있어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KAI-록히드마틴이 APT 사업을 수주할 경우 7대3 수준으로 계약금액이 산정될 전망이다. T-50A 최종 조립공장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설치할 예정이다.




2016년 11월 KAI는 경상남도 사천시 본사에서 T-50계열 항공기의 5,000시간 무사고 비행시험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열었다.2016년 11월 KAI는 경상남도 사천시 본사에서 T-50계열 항공기의 5,000시간 무사고 비행시험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열었다.


미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변수
국내 항공학계도 T-50A가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재우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속선회율의 경우 APT 사업에 참여한 업체 네 곳의 기종들이 유사한 수준으로 파악되지만, T-50A는 ‘High-G(중력의 7~8배가 걸리는 격한 기동)’, ‘고받음각(물체의 중심선과 운동방향이 이루는 각으로 비행 중인 전투기의 받음각 한계치는 50도로 알려져 있다)’ 같은 부분에선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T-50A의 기반 모델인 T-50은 5,000회 무사고 비행시험을 달성했다. 위험성이 높은 비행시험 단계에서 5,000회 동안 사고가 없었던 건 초음속 항공기 개발 역사에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재우 교수는 “F-16, F-35, F-22 등 세계 유수의 초음속 전투기들도 비행시험 2,000회 이전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다”며 “T-50A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T-50의 업그레이드 모델이란 측면에서 기술력과 신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재훈 연구원은 “록히드마틴이 이미 5세대 주력 전투기를 제작하고 있고, 기존 T-50 훈련기도 비행 신뢰성이 확보돼 있어 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이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쟁 과정에서 수많은 이슈들이 제기되겠지만, APT 사업은 최종 계약자 선정까지 KAI 주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신형 기종을 개발할 경우 개발비 투자가 필요하지만, 미 공군이 요구하는 사양에 가장 부합하는 고등훈련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KAI-록히드마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50A가 자체 고등훈련기 모델을 보유하지 못한 경쟁업체들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란 점은 확실하다. KAI와 록히드마틴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 언론과 군 관계자들 대상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주도권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KAI-록히드마틴이 승리를 거머쥘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록히드마틴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록히드마틴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록히드마틴이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 낸 후원금은 188만 달러로, 미국 방위산업체 가운데 1위였다. 이에 대해 KAI 관계자는 “록히드마틴과 공화당 사이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트럼프 당선이 KAI-록히드마틴에 유리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회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초대형 사업인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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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가 단순히 후원금 규모 등만을 고려해 APT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방위산업 정책 기조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정책 등 변수가 남아있어 승리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방위산업 각 분야에서 복수 업체를 유지한다. 경쟁을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성능 향상을 가속화 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에서든 무기 공급에 지장을 초래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안전판이기도 하다.

1. KAI 기술자들이 이라크 등지에 수출할 FA-50 공격기의 배선 작업을 하고 있다. 2. T-50A의 시험비행 모습. 3. T-50A 조종석 시뮬레이터 모습.1. KAI 기술자들이 이라크 등지에 수출할 FA-50 공격기의 배선 작업을 하고 있다. 2. T-50A의 시험비행 모습. 3. T-50A 조종석 시뮬레이터 모습.


트럼프 당선자는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록히드마틴과 보잉 등 방위산업체에 ‘딴지’를 걸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F-35 계획과 비용은 통제 불능”이라고 지적한 뒤 “미국의 무기구매 계획에서 수십억 달러가 절약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2017년 1월 20일 이후 군사 부문과 다른 부문의 구매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발언은 대통령 취임 후 미국 방위산업체와의 계약에서 비용 절감을 철저히 관철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도입이 진행 중인 무기 사업은 트럼프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지만, APT 사업처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계약이 이뤄지는 부분에선 성능을 중시하는 군의 의도보단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트럼프의 의도가 관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기에 T-50A의 성능이 검증됐다고 해서 김칫국부터 마실 수는 없다. 과거 보잉은 스텔스 전투기 경쟁에서 록히드마틴의 F-35에 패했다. 보잉이 APT 사업에서도 패한다면, 보잉의 항공방위산업 부문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APT 사업을 보잉에 줄 가능성도 적지 않다.

KAI 관계자는 “고등훈련기는 F-35나 F-22 같은 전투기에 비해 요구 성능이 훨씬 낮다”며 “록히드마틴은 물론, 보잉과 노스롭 그루먼도 미 공군의 요구를 충족하는 고등훈련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넓다”고 말했다.


APT 수주는 국내 항공산업 성장의 디딤돌
APT 사업은 KAI 자체는 물론, 국내 항공산업의 도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하성용 KAI 사장과 임원들이 예비 사표까지 써놓고 사업 수주에 집중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2016년 10월 하성용 KAI 사장은 임직원 3,400여 명과 함께 전북 무주에 있는 덕유산을 등반하는 ‘2016 한마음 산행’ 행사를 열었다. 하 사장은 이 행사에서 “2014년 산행 때 KAI의 3대 미래 먹거리인 한국형전투기, 소형민수·무장헬기,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2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을 수주하는 일만 남았다”고 직원들의 분투를 격려하기도 했다.

항공 산업은 21세기 첨단산업을 주도해 나갈 미래 유망산업으로 꼽힌다. 항공 산업에서 발전한 기술은 여타 산업 분야로 파급되는 효과가 매우 크다. 거꾸로 연관 산업 발전 없이는 항공 산업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국내 조선·철강 등 중공업 분야의 수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항공 산업은 앞으로 수 십 년간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직결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데다 수작업이 많아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지식경제부가 펴낸 ‘항공 산업 발전 기본계획’에 따르면, 세계 항공우주 산업 시장은 2010년 4,000억 달러 규모에서 2020년 7,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 항공기 제작산업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전 세계 항공기 제조 업계 39위인 KAI는 2020년까지 15위권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첨단기술의 총합으로 완성되는 항공기는 한 국가의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항공기 수출은 그 동안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KAI는 1999년 출범했다. KAI가 가장 먼저 선보인 비행기는 KT-1 훈련기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군용 항공기 KT-1은 ‘웅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2000년 11월 양산 1호기를 우리 공군에 배치한 이후 총 85대가 도입됐다. KAI는 2001년 KT-1 17대를 3차에 걸쳐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항공기 수출 사례였다. 2007년에는 터키에 40대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고, 2010년부턴 T-50 고등훈련기, FA-50 경전투기 등으로 수출 항목을 다양화하기도 했다.

설립 직후인 2000년, KAI의 수출은 900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신시장 개척을 통해 국산 항공기와 항공기 기체구조물 수출 확대에 주력한 결과, 2015년에는 전체 매출의 62%인 1조 8,000억 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항공기 개발 후발국의 열세를 극복한 KAI는 2016년 7개국에 총 137대를 판매해 34억 달러 규모의 국산 항공기 수출 실적을 거뒀다.

KAI는 중단거리 인기 기종인 보잉 B737 꼬리 날개의 세계 수요량 50%도 제작하고 있다.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인 B787 기종의 동체 일부분도 KAI가 100% 납품하고 있다. 에어버스 최신기종 A350의 날개골격 역시 KAI가 전량 공급하고 있다. KAI는 A350 날개골격 제작을 위한 별도 공장을 짓고 아시아 최초로 설계승인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보잉의 공격용 헬리콥터인 아파치 동체도 KAI가 전량 생산하고 있다.

물론 KAI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일본과 중국은 항공기 부품 공급에서 벗어나 독자 민항기 양산을 앞두고 있다. KAI도 2019년부터 90인승 이하 독자 중소형 민항기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다른 나라 업체에 비해 경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KAI가 APT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항공기 제조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T-50A가 앞으로 미국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지 여부에 업계의 관심과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하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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