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비로 시작해 메탈리카, 마릴린맨슨, 너바나, 펄잼, 레드핫칠리페퍼스, 드림시어터, 오아시스, 부시 등등의 테이프와 CD를 모으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10대 때 듣던 음악을 앞으로도 평생 듣게 될 줄 알았죠. 실제로도 그때 듣던 밴드들 대부분은 지금도 가끔 찾아듣긴 합니다만 새 앨범이 나오면 반드시 듣는 밴드는 몇 안됩니다. 세상엔 좋은 음악이 너무나 많고 취향은 느리게나마 변하더군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하는 음악도 있죠. 마음이 고달플 때 기어들어가서 쉴 수 있게 해 주는 창고 같은 음악들요. 특히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없는 뮤지션들이라면, 제 머릿속에 아름다운 박제처럼 남아있게 됩니다.
그렇게 기억되는 뮤지션이 둘 있습니다. 한 명은 엘리엇 스미스. 또 다른 한 명은 밴드 ‘타입 오 네거티브’의 피터 스틸입니다.
엘리엇 스미스는 평생 우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양부의 학대에 우울증도 앓았죠. 34세에 자살했습니다. 언뜻 그의 음악은 담담하지만 듣다 보면 너무 큰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의 체념이 느껴집니다. 그걸 표현하는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는 완벽한 균형점처럼 무심하죠. 그래서인지 전 왠지 들떠있을 때나 센치해지고 싶을 때는 엘리엇 스미스를 못 듣습니다. 한창 신났을 때 누군가 생의 어두운 면을 들이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 중 한 곡, ‘Between the bar’를 띄웁니다. 신나는 토요일 오전에 잠깐 들었더니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피터 스틸은 48세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고2, 고3 때 열심히 들었던 목소리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죠. 사실 고딕 메탈을 표방하는 타입 오 네거티브는 조금 유치했고, 피터 스틸의 언행은 더더욱 그랬습니다. 나이먹고 덩치 큰 중2 같았죠. 그래도 그들은 정말 뚜렷한 세계관과 음악관이 있었습니다. 북유럽의 숲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에 19금 가사(…). 뜸했다가 다시 돌아올 땐 조금이라도 진화한 앨범을 들고 와서 반가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곡 들어보시죠. ‘In praise of Bacchus’ 소개합니다. 이 곡은 공식 뮤직비디오가 없어서 앨범 표지에 음악만 재생됩니다. 전 가끔 다시 들을 때마다 엄청난 사운드라며 감탄하곤 합니다…하앍.
두 뮤지션은 저에게 ‘저녁용’ 혹은 ‘흐린날용’인데 주말 대낮부터 들었더니 좀 심란합니다. 고양이들이랑 놀아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