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세부계획 관련 연설에 앞서 사전 공개된 연설문의 핵심은 영국이 줄기차게 유럽연합(EU)에 요구해왔던 단일시장 접근권을 포기하더라도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가 공개한 연설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영국은 부분적인 가입이나 준회원 자격을 유지해 EU에 남을 생각이 없다”며 완전한 EU 탈퇴를 선언했다. 텔레그래프는 메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이 EU 단일시장 접근권에 대한 완전한 철수를 선언하는 것이라며 이후 영국이 유럽은 물론 EU 관세동맹과 관계된 세계 주요국들과 새로운 무역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 총리도 연설문에 12가지 주요 브렉시트 목표 중 ‘세계 주요 국가나 블록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제시하면서 무역협정에서 새판을 짜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메이 총리가 이처럼 ‘하드 브렉시트’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자칫 EU에 대한 시장 접근권 확보를 위해 난민 수용 등을 허용할 경우 받게 될 국내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예상과 달리 영국 경제가 호조를 이어간데다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기업들의 ‘탈(脫)런던’ 움직임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이 같은 결정의 배경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은 이 같은 영국의 기대와는 달리 우려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메이 총리의 연설문이 공개된 후 17일 영국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는 파운드당 1.2018달러까지 추락한 반면 안전자산인 금은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는 등 시장이 출렁거린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영국 상품거래소에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1,208.70달러를 기록해 장중 기준 지난해 11월24일 이후 7주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다.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런던 미즈호은행의 닐 존스 헤지펀드 판매책임자는 “(메이 총리 연설을 앞두고) 시장이 리스크 회피 모드로 거래되고 있다”며 “파운드화 가치 하락은 가혹하고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이 당장 EU의 관세동맹에서 벗어날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는 것도 이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탈퇴 이후 EU가 맞이할 현실에 대한 걱정도 크다. 다른 국가들이 추가로 EU를 탈퇴할 경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EU 탈퇴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경제난이 심각한 이탈리아다. FT는 지난해 말 이탈리아에서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부결되고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물러나는 등 정치 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주요 은행들이 금융위기에 빠지는 등 경제적 혼란까지 가중돼 EU를 포함한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이탈리아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오는 2018년 4월로 예정됐던 차기 총선이 렌치 총리 사임으로 앞당겨지면서 EU 탈퇴를 주장하고 있는 오성운동이 의석수를 늘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FT는 이탈리아 외에도 그리스·스페인 등 경제난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도 유로존 체제에 대한 반기를 들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