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가짜뉴스와 위험한 '썸' 타는 한국 정치

온종훈 논설위원

사실확인 안된 무차별 폭로에

국가 리더십 공론화는 뒷전

자극적 보도·네거티브전 접고

후보 능력·정책부터 검증해야

온종훈 정치부장 사진




# “사실인 듯 사실 아닌 사실 같은 너.” 최근 정치권에 있는 지인이 카카오톡을 통해 보내준 문자 내용이다. 최순실 사태 이후 줄기차게 이어지는 언론 폭로와 이에 대한 분석을 빙자한 대담·토론프로그램 등 ‘뉴스의 홍수’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짜증을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가요 ‘썸’의 노랫말로 패러디한 것이다. 그가 아니더라도 여과되지 않은 무차별적인 뉴스와 의혹 제기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후임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반 전 총장의 대통령 선거 도전을 “유엔 협약 위반”을 이유로 반대했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그러나 이는 ‘가짜 뉴스’로 판명 났으며 충남도 측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한 발언”이라며 해당 발언을 수정해야 했다. 똑같이 가짜 뉴스에 낚였던 한 전직 의원 또한 이 부분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가짜 뉴스의 피해자였던 반 전 총장 역시 지난 12일 인천공항 귀국장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23만달러를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그는 이 의혹에 대해 “제 이름이 거기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반 총장의 해명에도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 그가 등장했다는 이유로 두고두고 공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이 의혹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


이른바 검증되지 않은 의혹과 이에 대한 공방은 대선마다 그랬고 이번 대선에서도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혹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막장 드라마’ 같은 진영 간 충돌은 불 보듯 하다. 국민들은 편의대로 이를 받아들여 갑론을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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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선거 날에 임박해서까지 그에게 제기된 BBK 의혹과 관련 증인의 귀국, 검찰 조사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력·사상 문제와 지금 그를 탄핵받게 만든 최태민 목사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으로 공격을 받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혹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12년 대선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됐다.

결국 문제는 이 같은 불확실한 사실에 기초한 의혹검증에 매달리면서 정작 후보의 능력 검증과 정책 이슈는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골치 아픈 정책 개발이나 사회 이슈 제기보다 경쟁후보를 깎아내리는 방식의 선거운동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그래서 후보까지는 모르더라도 선거의 실무조직은 이런 네거티브의 유혹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캠프의 대응팀이라고 하지만 정작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주도해온 것은 여의도 정치권의 오래된 상식이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우리에게 대선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이상으로 국가 리더십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다. 국가와 사회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본질이다. 후보의 도덕성 문제도 반드시 검증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후보와 후보의 추종 세력이 국가 경영능력이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선거라는 5년마다 서는 시장에서 유권자는 ‘권력의 위임’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가장 매력적이고 유용한 상품을 사는 것이 대선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권력을 끌어가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대한민국은 계속 가야 한다. 그럼에도 대선판에서 제기되는 후보 관련 의혹과 이에 따라 판치게 될 ‘가짜 뉴스’ 들 틈바구니에서 정작 중요한 사실이 묻히고 있다. 한반도 주변으로 국가 우선주의 색채가 강한 지도자들로 배치되면서 여기에 낀 한국의 외교적 선택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를 해결한다고 추진한 노동 등 개혁작업들이 최순실 사태 이후 ‘올스톱’됐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당면한 사실,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할 때다./jhohn@sedaily.com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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