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삼성은 지난 1938년 삼성상회 설립 이후 총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죄로 기소하려던 특검의 수사에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삼성으로서는 일단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면서 이 부회장 주도로 인사와 그룹 문화 등에서의 강력한 쇄신작업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핵심부가 불구속 상태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수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경영활동에는 지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8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19일 새벽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뇌물범죄 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다툼의 여지 등을 기각 사유로 제시했다. 아울러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심문에서 특검이 주장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고 맞서며 구속을 피했다. 법원은 삼성의 특혜지원은 뇌물이며 이 부회장이 의사결정에 관여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 부회장 측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에 앞서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 청문회 위증 등 세 가지 혐의를 적시했다.
이 부회장이 구속을 면하기는 했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은 당분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기존 사업에 대한 대규모 시설투자에 제동이 걸리게 됐고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성장동력 분야에 대한 기업 인수합병(M&A)에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삼성의 한 CEO는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하고 삼성그룹 에너지를 법원 재판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나 기업 인수에 나서기는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지난해 말 국회 청문회 등에서 그룹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만큼 재판과 별개로 사장단·임원인사, 미래전략실 해체 등 그룹 내부의 쇄신작업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그룹 안정을 위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미전실 핵심 수뇌부가 삼성을 이끌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강도 쇄신 인사를 통한 그룹 정상화, 체질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성수·서정명기자 s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