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취직의 계절이다. ‘천자문(千字文)’에서는 취직을 ‘섭직(攝職)’이라 표현하고 있다. ‘잡을 섭(攝)’ 자에도 ‘귀 이(耳)’ 자가 들어 있고 ‘직무 직(職)’ 자에도 ‘귀 이(耳)’ 자가 들어 있다. 직장을 구할 때 치러야 하는 것이 필기와 실기, 그리고 면접(面接)이다. 면접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에 얼마나 답을 잘 쓰는가도 있지만 실제로는 면접관의 물음을 얼마나 성실하게 듣느냐로 당락이 정해진다고 한다.
직업의 ‘직(職)’은 기록한다는 뜻이다. 직장인의 성실성에서 첫째는 잘 듣기(耳)이고 둘째는 잘 말하기(音)이며 셋째는 잘 드러내기(戈)이다. 이들 듣기·말하기·드러내기로 ‘직무 직(職)’ 자가 꾸며져 있다.
‘직(職)’자에서는 듣기(耳)와 말하기(音)를 대표로 들고 있는데 여기에 눈(目)과 코(鼻)를 합해 이목구비라 한다. 한문의 ‘이목구비(耳目口自)’ 네 글자가 서로 조금씩 닮은 구석이 있다. 이목구비의 ‘비(鼻)’는 ‘비(鼻)’ 대신 이처럼 ‘스스로 자(自)’ 자를 쓰기도 하는데 이는 ‘코 비(鼻)’ 자와 ‘스스로 자(自)’ 자가 같은 글자인 까닭이다. 처음에는 ‘스스로 자(自)’ 자로 통용됐는데 나중에 ‘비(鼻)’ 자로 독립한 것이다.
‘이목구비’의 한문 모양새가 닮은 것은 이들 귀와 눈, 입과 코의 기능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입을 벌려 하품을 하다 보면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하고 코를 좀 세게 풀다 보면 느닷없이 귀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비행기가 높이 날다가 착륙을 준비할 때 기압 차이에서 오는 문제지만 귀가 먹먹해질 때가 있다. 높은 산에 올랐다 내려올 때도 가끔 느끼는 현상이다. 이때 침을 삼키면 귀가 뻥 뚫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숨은 코로 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러 입으로 쉬기도 한다. 귀와 콧구멍이 연결돼 있는 것은 유스타키오관(eustachian tube)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처럼 발달한 첨단과학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한자를 만들어낸 옛날 사람들의 삶의 지혜와 한자에 깃들어 있는 사상과 문화·의학·생물학·생활과학 등을 살피노라면 나름대로 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직무 직(職)’ 자를 놓고 보면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드러냄이라 했는데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 개인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아름다운 이름이 그로 인해 드러나는 것이다. ‘창 과(戈)’ 자는 무기의 일종일 수 있으나 ‘직(職)’ 자에 들어 있는 창(戈)은 깃발이 펄럭이는 큰 절 앞의 ‘찰간(刹竿)’과 같은 것이다.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는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찰간대가 많이 세워져 있다. 높이 선 대나무 장대 끝에 녹색 페넌트(pennant)가 펄럭이면 정당(政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점집이거나 무당집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직(職)’ 자의 뜻이기도 하다. ‘깃발 치, 기 치(幟), 기치 치(織), 말뚝 직, 직분 직’ 자 등이 있지만 이처럼 ‘거둘 직?’ 자가 들어간 글자들에는 드러내기·광고하기의 뜻이 담겨 있다. 자신으로 인해 그 부서가 빛나고, 그 회사가 이름을 드날리고, 그 공장이 유명해지고, 그 가게가 더욱 번창한다면 그는 직분(職)에 충실했다고 할 것이다.
동봉스님·곤지암 우리절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