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압력의 배후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고 특검은 이들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나는 영화평론가로 한때 몸담은 적이 있던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다 알다시피 지난 2014년 제19회 영화제 때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면서 영화제는 전례가 없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조직위원장이던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 철회를 요구했고 영화제 측은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을 이유로 상영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임되고 이어 전양준 부집행위원장 등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요즘 ‘다이빙벨 사태’의 발단이 서병수 개인의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영화계 좌파 척결의 맥락에서 이뤄진 조직적 음해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배후에 ‘법꾸라지’ 김기춘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영화제 국고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데도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조만간 특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 하나가 더 남아 있다. ‘다이빙벨’을 만든 이상호 감독이 2015년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가 돌연 취소됐는데 그 배경에 한국 영화계의 유력인사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요점은 이렇다. 디터 코슬리크 위원장이 처음에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비극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다이빙벨’을 특별상영(special case)하기로 했다가 돌연 상영 취소 통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상영시 영화제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 전체가 곤란해질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코슬리크는 영화제가 끝나고 1주일 후인 2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이 보내온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러한 정황을 들어 이 감독은 ‘매우 정치적인 인물’인 코슬리크가 한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요점은 코슬리크에게 그 같은 결정을 내리도록 종용을 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그 문제의 인사가 영화제 고위관계자라고 실명을 거론했다가 영화판에서 한동안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기사를 접하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에서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제67회 베를린영화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김시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