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LG실트론의 경영권을 6,2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LG는 비주력 사업인 웨이퍼 사업을 정리하고 SK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사업의 시너지를 키울 수 있는 거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활발한 와중에 기업 간 ‘빅딜’이 연초부터 이뤄지는 모양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와 ㈜LG는 이날 오후 각각 이사회를 열고 ㈜LG가 보유한 LG실트론 지분 51%를 6,200억원 규모로 SK㈜에 매각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사회를 통과한 안건이 양사 주주총회에서 의결되면 LG실트론은 SK실트론으로 사명을 바꾼다. LG실트론은 SK하이닉스에 웨이퍼를 납품하고 있으며 SK가 인수한 후에는 협력관계가 보다 공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최근 반도체 설비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어 LG실트론을 통해 더욱 원활한 웨이퍼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사는 기업결합 신고·승인 절차를 거쳐 연내 인수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LG실트론은 지난 1983년 동부그룹이 미국 화학회사 몬산토와 함께 ‘코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이어 1990년 LG가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으나 이후 LG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기면서 LG실트론도 LG 내 비주력 계열사로 머물렀다. 2007년 동부가 보유 지분 49%를 사모펀드인 보고펀드와 KTB PE에 넘겼고 현재 보고펀드에 인수금융을 댔던 대주단과 KTB PE가 49%의 지분을 갖고 있다. ㈜LG의 한 관계자는 “주력 사업, 신성장 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실리콘 웨이퍼 사업을 매각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LG실트론은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해 국내외 반도체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주력제품인 300㎜ 웨이퍼 시장에서 약 14%의 점유율로 세계 4위 규모다. 최근 실적을 보면 2012년 1,08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2013년(180억원)과 2014년(348억원) 연이어 적자를 기록했다. LG실트론은 2015년 5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3년 만에 흑자 전환했고 지난해에는 3년 만에 연간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20년대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반도체 호황에 대응해 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원자재인 웨이퍼의 원활한 확보가 중요하다. 당장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공장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해 2019년 6월까지 3D 낸드 전용 공장을 완공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4분기를 기점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재가입하면서 투자 여력도 커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올해 SK하이닉스의 전체 영업이익이 5조원 후반~6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SK그룹은 반도체 사업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과 연계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는 최근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을 다양하게 사들이고 있다. SK㈜는 2015년 반도체용 가스를 생산하는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약 5,000억원에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LG실트론 인수를 통해 SK하이닉스를 정점으로 한 반도체 수직 계열화에 성큼 다가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재계에서는 LG가 이번 매각으로 확보한 6,200억원의 자금을 활용해 신사업 육성을 위한 인수합병(M&A)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LG는 그간 M&A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 몇 년 사이 자동차 부품·소재를 포함한 신성장동력의 육성을 촉진할 M&A에 대한 의지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하우시스 등 주요 계열사들이 매달리는 차량용 전자장비 사업은 지난해 그룹 내 관련 총 매출액이 5조5,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른 상태다. 여기에 팜한농과 LG생명과학을 잇따라 합병한 LG화학은 바이오 농업·의약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M&A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이런 가운데 연초부터 터져 나온 SK와 LG 간 빅딜로 주요 기업들이 사업구조 재편을 위한 빅딜 거래를 잇따라 성사시킬지도 관심사다. 기업들이 주력 사업은 뭉치고 비주력 사업은 덜어내는 재편에 몰두하면서 올해 또 다른 빅딜이 전격 단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14년 11월에는 삼성그룹이 방산·화학 4개사를 약 1조9,000억원 규모로 한화그룹에 넘겼고 2015년에는 롯데그룹이 약 3조원에 삼성 화학 계열사였던 롯데첨단소재(옛 삼성SDI케미칼), 롯데정밀화학(옛 삼성정밀화학), 롯데BP(옛 삼성BP화학)를 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