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치열한 취업 환경에서 성장한 ‘삼포세대’ 서경씨는 ‘하나라도 더!’, ‘정직하게!’, ‘조직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입사에 성공했다.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없이 보낸 신입 딱지를 떼고 일이 손에 익어가면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서경씨.
‘어려움이 있다면 돌파하고’, ‘밝은 미소로 동료를 대하고’, ‘주변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스스로 자처해 돕는’ 등 인재상에 맞는 재원이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중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직하고 정직하게 일하려다 보면 어느새 소처럼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처럼 일하는 사람은 결국 소가 된다”는 선배의 말처럼!
음메~음메~~
소처럼 일하는 직장인도 처음부터 소는 아니었다. 하나 둘씩, 몸에 익어가면서 희생하는 순간이 생기고, 조금씩 양보하고, 참아가면서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이 소로 거듭나는 법이다. 혹자는 소 같은 사람을 ‘호구(?)’라고도 표현하지만 소는 절대 호구가 아니다. 무슨 일이든 도와줄 수 있는 동료, 업무를 시키는 방식이 탁월한 선배, 비상한 머리와 재주가 있지만 게으른 상사, 리더십도 나쁘고 관심도 제로인 상사 등이 조직에 켜켜이 쌓일 때 소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Whatare동기for
막 입사해 서로 회사의 전반적인 틀을 배우고 함께 회사 사람들을 탐구하며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동지들. 어린 나이에 입사해 회사의 A부터 Z까지 고민하며 ‘우린 이런 사람이 되지 말자’ 결의를 굳게 다지곤 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모토로 어려움에 처한 동기가 있다면 도와주고 커버하며 일상의 관계를 유지해오는 사이다.
동기 박군: 서경아. 우리 팀 최 과장 알지? 그 사람이 지금 당장 ‘2016하반기 물류RM’ 정리파일 내놓으라는데 여기 프로젝트 수주 규모가 숫자로 들어가야 하거든. 너네 팀에서 이거 관리하는 거 맞지?? 나 하반기 숫자만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주라 부탁해!!
서경씨: 야! 알지, 알지!! 최 과장 스피드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알겠어 지금 찾아볼게! 걱정마 박군~~
*서경씨의 업무리스트
1. 동기 박군이 부탁한 하반기 물류 규모(1순위)
자리에 앉자마자 오전 커피도 스킵하고 물류시스템을 켰다. 한 10분 정도만 엑셀로 추려내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수색해서 찾고 있는데 우리 팀 이 과장이 조용히 옆으로 오신다.
#슬며시찾아오는잡일
이 과장: 서경씨. 저번에 나랑 같이 만들었던 보고서 기억해? 우리팀 파트별 진행상황 리스트 모아서 다음 년도 기획하는 거 있잖아. 우리 그때 같이 밤 새면서 만들었잖아~ 엑셀 수식도 참 많이 배웠었지 그때..
서경씨: (뭔가 불안하다 ㅠㅠㅠ) 아~ 그거 기억하죠~ 그때 많이 배웠었어요. 그런데 왜요?
이 과장: 아니 그거 다시 업데이트해서 보고해야 하거든. 저번에 서경씨 한 번 배웠으니까 이번에는 혼자 한 번 해볼 수 있겠어?
서경씨: 아...뭐 배워두면 좋지만, 지금은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 과장: 에이 어렵긴~ 서경씨 잘 물어보고 빨리 빨리 배우잖아~ 이번에 한번 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 내가 알려줄게
서경씨: 네...(역시, 불안한 예감은 안 틀린다)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갑자기 생긴 보고서 작성. 원래 서경씨 몫은 아니지만 상사가 지시한 것이니 거부할 수도 없지만, 이 과장이 자신의 일을 떠 넘기는 것 같은 뭔가 찜찜한 감정이 맴돈다.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면 이 과장이 레이저를 보내올 것 같아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배운다 생각하고!’ 만들기로 한다.
*서경씨 업무리스트
1. 동기 박군이 부탁한 하반기 물류 규모
2. 파트별 진행상황 리스트 취합
재빨리 동기에게 서류를 넘기고 이 과장이 시킨 일을 하기 전 서경씨 자신의 업무를 먼저 시작했다. 오늘 해결해야 할 일도 꽤나 빡빡해 쉴 틈이 거의 없다. 저번에 이 과장과 밤새며 진행했던 엑셀 장표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냥 엑셀 책 펴고 검색하면서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어려움이 있다면 돌파!’ 카드를 꺼냈다. 시간은 재빨리 흘러 어느덧 오전 10시가 됐다. 갑자기 메신저에 창이 하나 떴다. 후배에게 일 시키는 걸로 유명한 조 대리다.
#일은너의몫!성과는나의몫!
조 대리: 서경씨~ 굿모닝~ 내가 지금 무슨 프로젝트 하는 지 알지? 이번에 회사에서 한 300억대 규모 사업 추진 중인 거 있잖아~ 주요 거점 해외 법인들 컨택해서 주변 상황 좀 알아야 하거든~ 서경씨 나랑 좀 찾아볼래?
서경씨: 아~ 알죠 대리님(아...조 대리...분명 나는 잡일 다 시키고 본인은 보고만 할 텐데... 같이 일하기 싫은데 선배라 거절할 수도 없고 ㅠㅠ)
조 대리: 응 그거 하면 이것저것 회사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을거야! 막 급한 건 아니고~ 그냥 이번 주는 초반 작업? 이번 주까지 그냥 법인들 주소랑 전화번호랑 유관 사업장 리스트만 좀 모아줘~! 근데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너무 어려워ㅠㅠ 서경씨 영어 좀 하잖아 그치?? 좀 도와주라~~
서경씨: 아...네....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프로젝트 같이 하는 건 팀장님이 알고 계신가요?
조 대리: 아 ~우리 팀장은 알고 있는데 너희 팀장은 잘 모르겠어~ 아마 이거 우리 사업장 전체에서 추진하는 거니까 말하면 무슨 사업인지는 알아 들을거야~ 근데 좀 더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커지면 말하는 게 낫지 않아?
조 대리가 일 시키기로 유명한 이유는 딱히 다른 건 없다. 수치에 강하고 기획력은 좋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부딪히고 힘겨워 하다 보니 편하고 시키기 좋은 사람을 주로 찾는다. 하지만 문제는 조 대리와 함께 일하면 늘 잡일만 맡게 되고 티는 나지 않는다. 아직 조 대리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은 없는 서경씨, 동기들한테 주의보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선배니 거절할 수도 없고, 이번 프로젝트가 회사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하니 구미도 당긴다. 그래서 예스!라고 답한다. 앞으로 업무가 이중삼중이 되면서 다소 벅차질 것 같지만!!! 일을 거부하지 않는 의지의 인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서경 업무리스트
1. 동기 박군이 부탁한 하반기 물류 규모(완료)
2. 파트별 진행상황 리스트 취합(진행 중)
3. 해외 법인 주요 거점 사업장 조사(이번 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업무 리스트와 기타 잡일이 포함된다.
*서경 업무리스트
1. 동기 박군이 부탁한 하반기 물류 규모(완료)
2. 파트별 진행상황 리스트 취합(진행 중)
3. 해외 법인 주요 거점 사업장 조사(이번주)
4. 거래처 메일 회신 및 금주 보고서 완료(내일)
5. 이번주 수요일 점심 회식 장소 예약(오늘)
6. 이번주 주요 사업장 뉴스스크랩(목요일)
7. 다음주 센터장 보고용 매출액 결산(금요일)
어느덧 산처럼 쌓여가는 일... 많은 일을 배워볼 수 있다고 애써 긍정의 에너지를 끌어 올리며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겠다 마음을 먹은 서경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팅!!’ 하는 마음으로 늘 전진하고 있지만 ‘나 홀로’ 바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월급은 다 같이 받는데, 왜 나만 이리 바쁜겨???”
한 번 소는 영원한 소라고 하던데... 내가 적당히 떠넘기기를 잘 못해서 그러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영리하게 길게 지치지 않고 회사 생활을 해야 한다면 여우가 될 것을 강조해온 선배들과,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돌파해야 한다는 회사의 인재상이 충돌하는 그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바쁘고 정신없을 게 뻔하지만 원래 이게 회사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견뎌본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연차가 쌓이면서 서경씨도 깨닫는다. 어제의 ‘예스’가 오늘의 ‘예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결심한다. “문제제기!를 위해서, 더 나아가 문제타파!를 위해서 오늘도 출근!!!”
※ ‘#오늘도_출근’은 가상인물인 32살 싱글녀 이서경 대리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우리 모두의 직장 생활 이야기입니다.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언제든 메일로 제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