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위정현의 이글아이 콘텐츠] 소프트파워 시대...남자는 도태되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얼마 전 게임사 대표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최근 청년층의 취업난을 피부로 느낍니다. 작년에 저희 회사 공채에서 경쟁률이 무려 240대 일입니다. 요즘 게임회사가 인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올 지는 몰랐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직원들이라,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게임은 지극히 창의적인 콘텐츠인데 어떤 사람이 잘할까? 그는 ‘국내파보다는 해외파가,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2015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약화되는 성(weaker sex)’이라는 제목의 분석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성적이 떨어지며 그 격차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64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성적이 약 1년 정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하위권 학생들의 차이는 더욱 컸다. 남학생은 읽기, 수학, 과학 등 3가지 과목에서 여학생보다 과락 확률이 50%나 더 높았다.

그런데 이런 부진의 원인으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게임과 인터넷 서핑이었다.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17%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보내고 있었다. 반대로 학습 시간은 여학생이 주당 5시간 반으로 남학생보다 한 시간 더 길었다. 게임을 더 하고 공부하는 덜 하니 남학생이 여학생을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기술과 엔지니어링 이해도에 대한 전미(全美) 테스트에서도 여학생 성적이 남학생보다 3% 높았다. 얼마 전 OECD가 발표한 PISA 2015에서 한국 순위 하락의 원인으로 남학생이 지목되었다. 그리고 남학생을 이렇게 만든 범인으로 간주되는 것 역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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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는 즐기는 게임 장르가 다르다. 남학생이 주로 RPG(역할 수행게임)나 슈팅게임을 하는 데 반해 여학생은 캐주얼게임을 한다. RPG는 캐주얼게임에 비해 플레이 시간이 길고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니 아들을 가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은 전쟁 상태다. 오죽하면 게임에 몰두한 아들을 보고 인터넷 랜선을 가위로 잘라 버렸다는 학부모가 있을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순간적으로 PC 전원을 꺼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게임사 대표의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단순한 성적이 아닌 ‘창의성’이라는 영역에서 조차 여학생이 우수하다는 ‘증언’ 때문이었다. 여학생 성적이 좋은 것은 기존 시험제도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는데 창의성 영역에 오면 그런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 남성은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도태되거나 문제 종(種)으로 찍힐 수도 있다.

물론 게임에는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핵 앤 슬래시’(자르고 베는 게임)에 치중한 게임도 많고, 슈팅게임처럼 상대를 공격하거나 죽이는 목적의 게임도 많다. 이런 게임들이 창의성을 함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에서 인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창의성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비해 인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창의성 영역이다. 또 창의성과 더불어 중요한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공감 그리고 명령과 복종이 아닌 설득과 이해에 기반한 리더십이다. 이런 능력들은 소프트파워라 부를 수 있다.

남자가 스스로를 패착으로 몰아간 역사적 사례는 많다. 그 중 하나가 가전의 발명이다.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 등의 가전은 남성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했지만 여성의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 왔다.

남성이 개발한 게임이 만일 남성의 도태를 촉진한다면 이 역시 가전처럼 패러독스가 될 지 모른다. 남성이 자신의 종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다면 남성의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게임, 예를 들어 소프트파워를 키울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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