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대선주자 대기업 정책 공약] 출총제...기업분할제...재벌개혁, 사문화 규제로 선명성 경쟁만

■주요 공약 내용 살펴보니

선진국선 이미 30년전에 사라진 정책 등 잇달아 내놔

文·安, 검찰 입김 세지는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 추진

유승민 '기존 순환출자 해소'·이재명 '재벌 범죄수익 환수'

징벌적 손배제·집단소송제도 구호수준 그쳐 검증 어려워



최순실 국정농단과 맞물려 돌아가는 이번 대선의 최대 정책 화두는 재벌개혁이다. 여야나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각 진영에서는 엇비슷한 대기업 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예년보다 빨리 돌아온 대선 앞에서 재벌개혁이라는 구호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후보는 드물다. 공약을 내놓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전례가 없고 부작용이 큰 규제, 국회 통과 가능성이 낮은 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개혁의 역사는 군사정부가 ‘사회정의’를 내세워 정권의 기반을 탄탄히 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전두환 정부가 처음 공정거래법을 만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박정희 정부 말미에 재벌의 위세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는 이를 다잡으면서 개혁 이미지를 심는 동시에 정권의 정당성을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권은 제재와 사면을 반복하며 기업 길들이기를 해왔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대선 후보들은 재벌개혁에 대해 경제정책으로서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정권을 잡기 위해 ‘누가 더 세게 외치느냐’는 선명성 경쟁에 매몰돼 있는 상태다.

우선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이 재벌개혁과 관련,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만 공정거래법 위반을 검찰에 고발하게 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검찰이 수사해 형사처벌로 넘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모든 공정거래법 위반에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중소기업·중견기업 간 경쟁사를 비토하기 위한 고소·고발이 남용될 우려도 있다. 검찰 기소독점권과 수사권 축소 등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도 정반대인 정책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전속고발권 폐지만 주장하기 전에 어떤 분야의 형사처벌 조항을 줄이고 금전처벌을 늘릴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지율 1위 후보 진영에서 때 지난 공약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약으로 직접 밝힌 대기업 지주회사의 자회사 소유 지분율 강화 역시 모든 기업에 일률 적용함으로써 효과보다 비용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직접 규제하지 않고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면서 “자회사 지분이 80%를 넘지 못하면 세 감면을 받지 못하거나 소액주주의 소송권을 높이는 식으로 대주주가 필요에 따라 지분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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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새누리당이 내건 기업분할명령제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높다. 기업분할명령제는 원조 격인 미국에서 1982년 통신사인 AT&T에 적용한 후 시행한 역사가 없고 1972년 제도를 도입한 일본도 가동하지 않았다. 각국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키워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취지와 맞지 않고 기업분할을 명령해도 이에 반발하는 기업과 송사를 수년간 벌이는 중에 신산업이 등장하고 시장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효력이 낮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문 전 대표 측이 제기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명령제 역시 기계적인 규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계열사 지배가 ‘A→B→C→A’ 형태로 이뤄지는 순환출자는 지분이 적은 오너가 자본을 부풀려 기업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순환출자가 아닌 ‘A→B→C’ 형태로 발생하는 지배력 강화는 막지 못한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도 확대도 각 후보의 단골 공약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도 활용을 꺼리는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는 반박이 나온다. 지금도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에 대해 3배 이내의 징벌적 손배제가 가능하지만 대기업과 거래 단절을 우려하는 중소기업이 소송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집단소송제도 증권 분야에 한해 도입돼 있지만 승소한 사례는 현재까지 1건뿐이다. 막상 소송을 한다고 해도 증거 수집이 어렵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 거론되는 ‘디스커버리(소송 전 양측이 증거를 공개하고 조사하는 것)’제도는 사법부의 반대로 도입되지 않고 있다. 김상조 소장은 “대선 후보들이 재벌개혁을 내세우면서 국회 통과 가능성이나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선명성 경쟁에만 매몰된다면 그야말로 재벌의 ‘부역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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