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보면 아직 ‘극단의 위기 상황’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형’까지 종합해서 판단하면 ‘위기를 짙게 풍기는 비상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비상벨의 데시벨 또한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상승 간격도 점점 짧아지는 모습이다.
내수시장에서의 판매 부진과 줄어드는 영업이익 및 마진율, 글로벌 시장에서 쪼그라드는 전체 파이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펼쳐지고 있는 통상 파고까지 ‘4중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덮쳐오면서 현대차 스스로 감당하기 힘겨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①내수 점유율 하락…단출한 라인업에 판매 확대 제동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50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가성비)’이었다. 일본·독일 브랜드와 비슷한 품질에 가격은 20~30% 저렴한 것을 무기로 무섭게 성장했다. 미국과 중국에는 세단 위주의 생산 공장을 늘렸고 연 70만대 이상 판매되는 든든한 내수시장 역시 현대차 성장의 동력이 됐다. 영업이익률은 9~10%대를 기록했고 연 10조원씩 벌어들였다.
하지만 지난 2010년대 들어 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로 선호도가 급속히 바뀌었다. 인도와 러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는 ‘크레타’ 등 전략 모델을 투입했지만 미국과 중국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현대차가 올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중형 SUV ‘싼타페’를 지난해의 2배 수준인 6만5,000대로 늘리고 중국에서는 SUV 등 전략 차종 3종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해준다.
국내 시장은 더 힘겹다. 수입차 판매가 너무 빠르게 늘면서 현대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65만대로 7%가량 급감했다. 이에 따라 내수 점유율은 2012년 43.5%에서 36.3%까지 떨어졌다.
올해 국내 시장에 소형 SUV인 ‘OS(프로젝트명)’를 투입하지만 시장 상황을 단시일 내 바꾸기는 힘겨워 보인다.
②줄어드는 영업이익…R&D 재원 확보 비상
문제는 영업이익률이다. 판매 증가가 생각만큼 늘지 않으면서 마케팅 및 판매 보조금 비용을 늘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영업이익률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그나마 판매가 잘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시장에서는 보조금이 1년 전보다 15%나 늘었다. ‘아반떼’와 ‘쏘나타’ 등 현대차의 주력 차종은 모델 변경 기간이 4~5년 정도로 비교적 긴 편이라 영업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판매 부진으로 수익 구조가 나빠졌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판매 확대나 친환경차 ‘아이오닉’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 역시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영업이익률 감소는 신차를 개발할 R&D 재원의 감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신호다. 현대차의 지난해 R&D 비용은 2조원 전후로 파악된다. 차량 판매대수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기아차까지 더하더라도 4조원에 못 미친다. 지난해 도요타는 1조800억엔(약 11조758억원), 폭스바겐은 136억유로(약 16조9,300억원)를 R&D에 투자했다. 판매량은 20% 정도 차이 나지만 투자액은 5분의1 수준이다. 완전히 새로운 파워트레인이나 연비가 더 우수한 차를 만들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③쪼그라드는 글로벌 車 시장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 역시 문제다. 미국 시장 판매는 7년 연속 성장했지만 올해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주력인 승용차 판매 둔화는 물론 기준금리 인상으로 할부금융 비용이 늘면서 0.2% 역신장할 것이라는 예상이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시작되면 수출 물량은 자연스레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상황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7%가량 성장한 중국 시장 역시 정부가 소형차에 대한 구매세 인하폭을 축소하면서 판매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올해 중국 자동차 시장이 전년 대비 6.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시장 또한 경기 흐름을 볼 때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과거만큼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④트럼프발 파고 감내할 수 있을까
현대차의 강성 노동조합 역시 큰 문제로 지적된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전면파업을 포함한 24차례의 파업과 12차례의 특근 거부로 회사에 14만2,000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피해액만도 3조원이 넘는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본격화되면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에 판매하는 33만대 물량은 자연스럽게 공장 증설 등을 통해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생산 물량 배정 등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갈등에 따른 피해액 역시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자칫 통상 갈등에 따라 세금 문제까지 발생할 경우 파장은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한미 FTA까지 개정될 경우 현대차의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제네시스뿐 아니라 친환경차 아이오닉 라인업 확대, 미래차인 커넥티드카 등에 대한 투자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 점도 현대차에는 부담이다. 양산차가 안 팔리면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현대차의 위기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장 서둘러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기본기에 충실한 연구개발과 상품성을 통해 변화가 필요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