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식 블록버스터 좀비영화의 새 장을 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설 연휴 안방을 찾아왔다. 좀비영화 특유의 공포와 긴장감에 더해 호쾌한 액션과 간간이 터져나오는 웃움, 감동이 어울어져 명절 가족과 함께 시청하기 좋은 영화다.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주인공 석우(배우 공유 분)는 별거 중인 아내와 이혼소송 중이다. 석우는 어느 날 부산 친정에서 별거 중인 엄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외동딸 수안(김수안 분)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역내에서 알 수 없는 군중의 소동이 일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부산행 고속열차에 몸을 싣는 석우 일행. 열차가 출발하기 전 의문의 소녀가 객차 안으로 뛰어들고 곧이어 몸을 뒤틀며 심한 발작을 일으킨다.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긴급히 달려간 승무원은 소녀를 돌보다 물어 뜯기고 곧이어 그 역시 흉측하게 몸이 뒤틀리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동료와 승객들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하는 데. 평온할 줄 알았던 부산행 기차가 공포의 좀비 열차로 변모하게 되는 순간이다.
부산행은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국내에서 관객수 1,000만명 돌파기록을 세운 히트작이다.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내 청룡영화제 등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국의 대표 미남 배우 공유가 주인공 역을 맡았고, 아역 배우 김수안이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당돌하면서도 내공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들이다. 인간미 있고 구수하면서도 박력있는 ‘아저씨표 액션’연기로 사랑 받아온 배우 마동석이 주인공들과 호흡을 맞추며 긴박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 서울~부산간이라는 노선이라는 한정된 운행시간 속에서도 다채로운 소재와 상황을 이끌어내는 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줄거리와 배우들은 훌륭하지만 장면 장면의 섬세함이나 음향,특수효과, 배경 등이 조화되지 않는다는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고질적 문제점은 부산행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한 오락성을 떠나 돌발 재난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을 고발하는 시사성도 갖췄다. 모든 면에서 한국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인 수작으로 꼽히는 부산행으로 설 연휴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