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풍속도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설날과 추석 양 명절이 되면 민족대이동의 수식어만큼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고향을 찾느라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친인척을 만나기도 하지만 휴가지에서 색다른 연휴를 즐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고향이나 집이 아니라 휴가지에서 제사를 지내는 진풍경이 심심찮게 벌어지고는 한다. 이렇게 설날을 지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명절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특히 여성들에게 쉽지 않다. 명절음식을 장만해서 차례 상에 올리며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두는 ‘홍동백서’, 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두는 ‘좌포우혜’, 왼쪽부터 대추·밤·배·곶감을 두는 ‘조율이시’ 등을 사자성어처럼 외기도 한다.
정성 들여 제사음식을 마련해 제사상에 풍성하게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면 후손으로서 도리를 다한 듯해 마음이 뿌듯하기도 한다. 이제 제사에 올리는 음식 종류나 진설 절차에 많은 신경을 쓰기보다 현대 생활에 맞게 제사음식을 조정하고 제사상에 오르는 제물의 생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면 좋겠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지만 많은 열매가 열리는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어서 자손의 번창을 상징했다. 우리는 인구 절벽의 상황을 앞두고 있으므로 대추를 통해 자손의 번창은 아니더라도 출산과 육아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만하다. 밤은 땅속 씨앗에서 싹이 나와 자라 열매 맺을 때까지 껍질이 뿌리를 감싸고 있어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아울러 밤은 한 송이에 세 알 정도 들어 있어서 삼정승처럼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도 했다. 이처럼 제물을 빠짐없이 마련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사상에 올리는 제물의 생태와 상징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 인문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예기’를 보면 제사 자체도 등급이 있다. 특히 하늘에 지내는 제사는 제일 등급이 높았고 그에 따라 왕이 당연히 참여하는 절차가 중요했다. 최고의 제사인 만큼 최고의 제물이 마련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때 최고의 음식은 사람이 많은 재료를 준비한 뒤에 온갖 솜씨를 발휘하고 향료를 아끼지 않은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기’는 우리의 이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큰 제사의 예는 물을 높이치고 조미하지 않은 날생선을 올리고 국을 끓이며 양념을 넣지 않는다(대갱불화·大羹不和). 최고의 제사음식은 사람이 솜씨를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그대로 내놓거나 아니면 최소의 솜씨를 가하는 것이다. 인공의 솜씨가 아니라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상태를 초월할 수 없다는 자연미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명절음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는 감각의 쾌락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치를 돌아보게 하는 데 초점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먹지 않은 제사음식을 냉장고에 쟁여 두고 처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제 인공미보다 자연미를 강조하는 대갱불화의 취지에 따라 명절의 풍경을 좀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명절음식 장만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 명절에 모인 사람에 관심을 가지자.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서 그간 나누지 못했던 사정을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도 있다. 명절의 제사와 인사를 나누고 가족끼리 무료로 개방하는 집 근처의 문화 유적지를 찾을 수도 있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명절이 음식 장만과 제사의 진행이라는 절차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으로 초점을 이동시키게 된다. 이러한 이동을 바탕으로 제사를 모시는 조상에서 조상과 후손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 어찌 보면 우리는 명절을 그럴듯하게 지내야 한다는 절차 중심의 형식에 갇혀서 명절을 지내는 사람이 힘들어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실질에 덜 관심을 뒀다고 할 수 있다. 모두 함께 흥겨워할 때 명절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