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교체를 내세우며 대권을 노렸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꿈이 귀국한 지 20일 만에 끝이 났다.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리며 20일간 한 차례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했다. 명예 실추 위기에 부딪힌 반 전 총장은 결국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지키기로 하며 뒤로 물러났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한때 3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한국인 최초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타이틀로 최고의 인지도와 비(非)정치인 출신이라는 신선함을 무기로 수년간 대권을 준비해온 잠룡들을 위협했다. 특히 강력한 라이벌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확장성에 물음표가 달렸던 만큼 반 전 총장에게는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반 전 총장이 대권 주자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5월 방한 때다. 반 전 총장은 당시 대구경북·제주를 찾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만나는 등 첫 대권 행보를 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그의 일정에 동행하는 등 여권 대선 후보로 치켜세웠다. 특히 반 전 총장은 국제기구 관련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과 매번 인사하며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라는 인식을 심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20일 귀국 전 한국 기자단과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할 용의가 있다”며 사실상 대권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귀국을 앞두고 ‘박연차 금품 수수설’과 ‘동생·조카 뇌물 공여혐의’가 터지며 청렴한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또 ‘신천지 연루설’로 시끄러웠다.
각종 스캔들에도 정면돌파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은 지난 1월12일 지지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귀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패권주의 청산과 정치교체를 주장하며 정계개편의 중심축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환대는 몇 시간이 채 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생수·2만원’ 해프닝을 만들며 비난을 받았다. 이후 ‘턱받이·퇴주잔’ 해프닝에 미흡하게 대처하며 논란만 키웠다. 귀국 초반 지지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기회였지만 오히려 ‘1일 1논란’을 남기며 비난 여론을 들끓게 했다. 위안부 합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 각종 현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는 “나쁜 X들”이라는 말을 남기며 또다시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귀국 이후 불분명한 입장과 현 정서에 동떨어진 언행으로 반 전 총장과의 연대를 염두에 뒀던 야권은 등을 돌렸고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지지율 하락에 빅텐트 구축도 어긋나기 시작했고 정당 입당에도 고심만 거듭한 탓에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돌파구 마련에 전전긍긍하던 반 전 총장은 1월31일 ‘개헌추진협의체’를 던졌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고 끝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