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님, 저는 수석님이라 부르는 게 훨씬 친근하군요.
20여년 전 아침마다 비서관들에게 날카롭게 물어보시며 그 어려운 이슈들을 간단명료하게 가닥을 잡아 주시던 일, 그 공포의 시간마다 자주 혼나는 모 비서관을 보며 언젠가 수석님에게 좀 너그럽게 해주시라 읍소하던 일이 새삼 생각납니다.
일에는 한없이 냉엄한 분이셨지만, 우리들에게는 늘 존댓말을 쓰시며 자애롭고 편안하게 대해주신 분으로 기억하며 새삼 그때의 기억이 아련해지는군요.
수석님, 지난 1월 초 병원에서 뵙고 ‘명절 연휴에 가봐야지’ 하다 부음을 받으니 제 게으름이 너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수석님, 수석님은 평생 공직자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신과 배짱을 가지고 깨끗하게 정직하게 일하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말로 정리해 주셨듯이 늘 우리나라와 한국 경제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길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석님의 그 지혜로운 ‘실용의 길’이 너무 그립고 이제 수석님이 그걸 보여주실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애통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옛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경제기획원에 계시던 수석님의 명성만 전해 들었고 당시 야인이시던 이헌재 부총리께 “기획원의 강봉균이 재무부에 갔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듣고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지요. 그러다 제가 청와대 정책수석실에서 사법개혁 일을 할 때 당시 행조실장이시던 수석님이 경제정책 이슈도 아닌 사법개혁과 관련해서도 법조와 상대해 탁월한 토론과 지혜로운 대안 모색 능력을 보여주셨음에 너무 놀랐고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이후 다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부임하여 전임 이석채 장관이 기치를 내건 정보화의 여러 과제들을 학계·업계 등과 소통하며 훌륭히 착근시키는 걸 보며 존경해 마지않았습니다.
수석님, 당신께서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많이 기여해오셨지만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라는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았을 때 수석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도 감히 ‘당시 경제수석으로서 ‘강봉균’이 없었다면 외환위기 극복이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당시 정권교체 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기 위해 신변정리를 하던 중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돼 3개월 만에 경제수석 소임을 맡으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뒤늦게 금융비서관으로 수석님을 보좌하면서 이규성 장관, 이헌재 위원장, 진념 위원장, 강봉균 수석의 드림팀이 어떻게 그 어려운 이슈들을 토론하며 헤쳐나갔는지 현장에서 생생히 체험한 것은 공직으로서 제 삶에 큰 영광과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수석님께서는 다른 분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방화벽을 만들어주고 대통령을 직접 설득해서 외부의 정치적 압력을 차단하여 소신껏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균형추 역할을 완벽하게 훌륭히 해내셨음을 감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저희가 시간이 촉박했던 어떤 문제를 “이렇게 가는 것은 대통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방향을 바꾸도록 설득해주세요”라고 하자 얼굴이 붉어지셨지만 흔쾌히 본관에 다시 가서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신 일이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생각보다 일찍 재경부 장관으로 영전하시면서 가까이에서 보좌할 기회가 없어진 것은 저 개인으로서나 이후 개혁 추진에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었습니다. 수석님은 정치에 입문하셔서도 ‘대한민국, 한국 경제를 위해 필요한 길이, 정책이 무엇인가’에 일관되게 매진하셨음을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일이며, 그것에 갈급한 우리 모두는 이제, 수석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에 더욱 슬퍼질 뿐입니다.
수석님, 이제 우리 모두가 언젠가 떠나야 할 길을 슬픔만이 아닌 사랑과 감사로 떠나 보내기를 원하며 정호승 시인의 시 ‘봄길’을 바칩니다. 편히 쉬소서!
진동수 올림
봄 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