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이 대선주자들의 대기업 관련 정책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기업 친화적인 대선주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은 반기업정서를 키우며 오로지 대선용 표심 확보에만 혈안이 됐다는 지적이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의 한 축인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를 쏟아내고 있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친기업 유력 대선주자는 전무=문 전 대표는 “재벌개혁이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며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서면투표를 도입하고 노동자추천이사제라는 감시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대표소송 단독주주권과 다중대표소송·다중장부열람권도 제도화하겠다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칭을 얻은 이재명 성남시장은 재벌해체론자다. 지난달 23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이재명식 뉴딜 성장정책’을 통한 공정성장을 강조했으나 사실상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거대 기득권 재벌체제, 정치를 쥐어흔드는 법 위의 삼성 족벌체제를 누가 해체할 수 있겠느냐”며 삼성의 해체를 강조했다. 아직 법의 심판대에 오르지도 않은 이 부회장을 범법자로 낙인찍고 사면하지 않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에 노동이사제 및 노동조합 설립을 관철해야 한다며 유독 삼성을 ‘손봐야’ 할 타깃으로 삼았다.
이 시장은 이 부회장이 상속세를 내지 않고 삼성그룹을 편법승계해 약 3조원의 이익을 봤다며 ‘이재명식 리코법(조직범죄 재산 몰수법)’ 제정도 촉구했다. 법인세 인상 요구도 가장 강력했다. 다른 후보들이 이명박 정부 시절 인하 직전의 25% 수준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데 비해 이 시장은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 대기업 440개의 법인세를 22%에서 30%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기업과 재벌의 독점적 지위, 공정거래를 해치는 행위 등은 반드시 개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순환출자제도 개선, 자사주 의결권 제한, 금산분리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일관되게 재벌개혁을 요구해온 대선주자다. 안 전 대표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동물원 구조를 갖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도약하려면 삼성동물원·LG동물원·SK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 대기업을 동물원에 비유했다. 평소 발언 수위를 고려하면 매우 과격한 수준이다.
◇보수 진영도 좌클릭으로 선회=보수 진영도 과거와 달리 기업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벌규제 방안을 연구했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노선을 ‘따뜻한 보수’로 칭하지만 시장경제를 추구해온 보수 가치에서는 상당히 좌클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대기업 순환출자 문제 해소를 위해 2009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을 되살리거나 대기업 계열사 간 상호출자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선주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놓고 있는 ‘기업 때리기’ 공약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전 대표가 제시한 노동자추천이사제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나라 경제체계나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로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가 우려되고 시장경제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이사회의 신속한 의사결정이 막혀 결국 주주들이 손해를 부담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전제로 법인세 인상을 당연시하는 정치권의 주장도 재계는 개념부터 잘못 정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내유보금의 상당 부분은 이미 투자자산으로 전환돼 경영 활동에 쓰이고 있고 미래에 사용할 돈이지 남아도는 돈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형준 경총 실장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기업의 투자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이 절실하다”며 “대선주자들도 이런 부분을 신중히 감안해 정책공약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이중과세 논란은 물론 투자 감소를 우려하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의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지고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기분 좋은 거짓말’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한국 기업들이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지 않느냐”며 “경제민주화의 취지는 좋지만 포퓰리즘에 편승한 과도한 제재가 이어지면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국 국내에만 매몰된 조치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