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미운 오리의 변신, B-747 점보기

1969년 2월9일 오전 11시, 처녀 비행을 위해 보잉사의 에버렛공장 비행장을 이륙하는 보잉 747 점보. 4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생산라인이 유지되고 있다.


1969년 2월9일 오전11시, 미국 시애틀 북부 에버렛시 보잉사 시험비행장. 잔설이 남아 있는 활주로를 박차고 거대한 기체가 솟구쳤다. 초대형 기체를 보려고 운집한 관객들의 환성과 박수가 터졌다. 아직도 생산라인이 가동되는 보잉747 점보제트기의 첫 비행 순간이다. 고도 610m에서 공항 상공을 선회한 시제기는 고도 4.7㎞까지 올라 눈 덮인 록키 산맥 위를 날았다. 미 공군의 F-86 전투기가 관찰기로 뒤를 따랐다. 1시간 50분 동안 처녀비행을 가뿐하게 마친 점보기는 무사히 내려앉았다. 처녀 비행 이후 보잉사는 시제기 5대를 투입, 1,400시간의 시험비행 끝에 그해 10월 말 형식 승인까지 받았다.


첫 비행 48주년에 이르기까지 각종 개량형을 합쳐 점보기의 생산 누계는 1,528대(2016년 말 기준). 초대형 여객기로는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전성기인 70~90년대에는 ‘점보기가 미국 경제를 이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경이적 판매고의 출발점은 좌절. 미 공군의 차기 전략수송기(C-X) 선정 경쟁에서 록히드사의 C-5갤럭시(생산누계 131대)에 패한 보잉사의 수송기 기체가 점보기의 원형이다. 보잉도 애초에는 점보기를 민간화물용으로 판매할 심산이었다. 초도 시험비행 기체도 화물기였다.

군용 수송기 경쟁에서 탈락했던 1965년 말 보잉사는 위기감에 빠졌다. C-X 프로그램이 발표된 1963년 초부터 사활을 걸고 개발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마침 여객기 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여객기는 모조리 초음속을 지나 극초음 여객기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하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는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를 공동개발하며 앞서 나갔다. 중형 여객기 시장에서는 보잉 B-707(생산 누계 865대)의 아성이 맥도널 더글러스 DC-8(556대)의 도전을 받고 있던 터.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1966년 3월 열린 보잉 이사회는 단안을 내렸다. ‘지금까지 제작했던 여객기보다 두 배 큰 여객기를 만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운이 따랐다. 세계 최대 민항사의 하나였던 팬아메리칸항공(팬암)사로부터 ‘새로운 초대형 기체가 성공적으로 개발될 경우’라는 단서가 붙은 주문이 들어왔다. 구세주를 만난 보잉은 창립 60주년(1966년7월15일)을 맞아 팬암사와 선계약을 맺었다. 무려 25대에 총액 5억2,500만달러. 요즘 가치로 51억 달러(미숙련 노동자 임금 상승률 기준)가 넘는 대형 계약을 맺은 보잉은 아예 사업구조를 바꿨다.

747


새로운 공장 건설을 위해 미국 내 50개 지역을 검토하던 보잉사는 시애틀 근처에 터를 잡고 보유 삼림을 밀었다. 당시까지 시애틀 인근의 삼림자원은 보잉의 상징으로 통했다. 창업자 윌리엄 보잉에 부를 안겨 준 출발점이 목재산업이었다. 아끼던 산을 깎아 건설한 점보기 생산공장은 면적 398,000 ㎡로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단일 빌딩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로 큰 빌딩인 에어버스사의 프랑스 툴루즈 본사 공장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워싱턴 주 에버렛공장 건설과 초도기 개발 및 제작까지 3년 동안 보잉은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로 달렸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한 점보기는 여객기 시장에서 대박을 쳤다. 초장거리 운항과 대량 여객수송 덕에 항공 운임까지 싸졌다. 기체 가격이 대당 2,400만달러였던 초기형(747-100)에 비해 2016년 생산분(747-8)은 3억5,000달러 이상으로 뛰었어도 여전히 주문이 나오고 있다. 보잉으로서는 군용기 시장에서 패배한 2년 동안의 위기와 절치부심이 반세기 가까운 먹거리를 확보한 셈이다. 여객기 뿐 아니라 각국 국가원수의 전용기와 미 공군의 지휘기로도 쓰인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타고 온 E-4 지휘기도 B-747-200의 파생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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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동안 생산이 많다 보니 사고도 적지 않게 겪었다. 초도비행 이후 지난해 5월까지 각종 항공 사고가 132회. 점보기 60대가 떨어지며 3,718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장괴한에 의해 32차례 하이재킹(공중납치)되며 24명이 죽었다. 보잉은 한국과도 관계가 깊다. 대한항공(KAL)은 37대의 점보기를 운용, 39대를 보유한 브리티시 항공에 이어 세계 2위의 점보기 운용민항사다.(같은 점보기라도 기체 구성으로 따지면 대한항공은 브리티시 에어보다 최신 기종을 훨씬 많이 운용 중이다. 아시아나 항공이 운용하는 14대와 대통령 전용기까지 합치면 한국의 점보기는 52대에 이른다.)

아이러니한 점은 점보기 개발비용 전액에 해당하는 주문을 냈던 팬암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팬암은 운임 경쟁을 선도하며 항공여객 대중화를 이끌었으나 연료비 상승과 경쟁 격화를 견디지 못하고 1991년 파산하고 말았다. 점보기 등장 48주년. 미래가 궁금해진다. 점보기가 처음 하늘을 날았던 1969년은 희망의 해였다.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의 첫 비행과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으로 사람들은 냉전 속에서도 인간의 무한한 진보를 믿었다. 당시의 희망과 활력이 지금도 여전한가. 앞으로 48년 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류가 미래에도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선다. 점보기 같은 역전이 있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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