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위기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라서면서 소·돼지고기 가격이 춤추고 있다. 업계는 구제역이 돼지로 확산되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육류와 유제품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날뛰면서 서민 물가를 옥죌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소·돼지고기 수급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대응하고 가격 안정에도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10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 지육 1㎏의 평균 도매가는 지난 9일 기준 1만6,459원으로 구제역 첫 의심신고 접수일 직전인 3일(1만7,326원)보다 5.0% 내렸다. 한우 지육 가격은 이달 초 상승세를 탔지만 5일 충북 보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된 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소고기의 대체품 중 하나인 돼지고기 가격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3일만 해도 1㎏당 4,251원이던 돼지고기 평균 도매가는 9일 현재 4,486원으로 5.5% 더 올랐다. 8일에는 4,757원으로 올 들어 최고가를 다시 쓰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각 유통업체들이 현재 7~10일분의 판매량을 재고로 보유하고 있어 정부의 구제역 대응 결과에 따라 그 이후 본격적인 가격 변동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9일 오후 늦게 구제역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가축 시장도 일시 폐쇄했기 때문에 앞으로 가격 상승세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부 도매·유통상들의 사재기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실정이다.
가장 큰 변수는 구제역이 돼지 농장으로 확산될지 여부다. 소고기는 국내 유통물량의 50% 이상이 미국·호주 등 수입산이어서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돼지고기는 90% 이상이 국산이다. 구제역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소·돼지를 348만마리나 살처분했던 2010년 구제역 파동 때도 돼지고기 가격은 40% 이상 폭등했다. 구제역으로 돼지고기 수요가 줄었지만 잇단 살처분으로 공급 자체가 워낙 억제된 탓이다.
국내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구제역이 돼지까지 확산될 경우 수입 외에는 가격을 잡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면서 “구제역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도 지속되고 있고 삼겹살데이(3월3일)와 캠핑 시즌까지 앞두고 있어 장바구니 물가의 인상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소 구제역이 장기화되면 우유 및 유제품 가격에도 상당한 파장은 불가피하다. AI 사태에서도 대체재가 없는 계란 가격이 급등하며 사상 최초의 계란 수입까지 발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유 및 유제품은 계란보다는 대체 품목이 있지만 유통기한이 열흘 내외로 계란의 3분의1 수준”이라며 “유통물량의 50% 이상이 수입산인 소고기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육류 및 유제품을 주로 사용하는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이날 맥도날드에 이어 8개 햄버거 품목에 대한 가격 인상을 단행, 관련 업계의 ‘도미노 인상’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한편 이날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축산물 수급 대응 등에 대해 논의했다. 소·돼지고기 수급·가격 안정을 위해 필요하면 수입 촉진 등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혼란을 틈탄 가공식품의 편승 인상, 담합, 중간 유통상 사재기에 대해서도 감시를 강화하고 농축산물·석유류의 가격 상승이 다른 부분으로 퍼지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유수영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당장은 아니지만 가격이 폭등할 경우 수입 촉진을 위해 수입산에 할당 관세비율 조정 등 가격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