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정국이던 지난 1992년 10월 국가안전기획부가 메가톤급 안보이슈를 발표한다. 정보·수사당국이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들을 대거 적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부지역당 사건’ 발표 이후 김대중 평민당 후보는 선거에서 패배한다.
북한발 안보불안 이슈가 국내 대선판이 차려지기도 전에 다시 정계에 어른대고 있다. 이른바 ‘북풍’의 재방송 조짐이다. 12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무력시위에 나서면서 여야의 각 대선주자 진영은 유권자 표심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판알을 튕기기에 분주하다. 여기에 더해 개성공단 재개 여부와 참여정부의 대북송금특검 수용 문제 등 과거사까지 새삼 불거지면서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이날 여야 주자들은 일제히 북한을 성토했다.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야권에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각각 규탄, 유감을 표명했다. 범여권에서는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도지사가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고립을 심화시키고 북한 주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지적했으며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도발 위협이 더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국민들의 경각심을 고조시켰다.
북풍은 후보별·유권자별 정치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안보 이슈는 연령대별로는 안정을 희구하는 40대층, 정치성향별로는 부동층, 성별 및 직업군별로는 가정주부층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안보 변수는 각 후보의 핵심지지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단했다.
문 전 대표에게는 이번 안보 이슈가 또 다른 시험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는 북한 탄도탄을 명분으로 국내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배치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또한 개성공단 가동 재개, 병역복무기간 단축 등을 주장해왔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문 대표의 안보정책이 지나치게 선명해 유권자들의 표 기반을 (중도층으로) 확대하는 데 제약이 있다”며 “안보 이슈 등에 대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진보적인 안보관을 가진 이 시장에게도 안보 쟁점화는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안 지사와 안 전 대표에게는 오히려 호기가 될 수도 있다. 두 주자는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비교적 수용적인 입장을 펴왔다. 배 본부장은 “안보 쟁점이 불거지면 안정을 희구하는 지지자들 사이에 ‘안희정이 당선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 수 있고 보수와 연대해야 한다는 여론도 탄력을 받아 촉매제가 될 ‘제3지대론’을 주창하는 안 전 대표에게도 유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 표심의 결집을 노리는 범여권의 주자들에게도 안보 이슈는 꺼릴 소재가 아니다. 남 지사와 유 의원 모두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단호한 원칙을 세우고 있고 개성공단의 즉각적인 재개는 외교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펴 왔다.
다만 안보 쟁점화가 보수 진영 승리라는 등식으로 항상 귀결되진 않는다. 최 교수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벌어졌지만 당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야권이 승리했다”고 지적했다. 각 주자들이 외교안보 전문가를 선거캠프에 영입해 유권자들의 ‘안보 불안감’을 달랠 여지도 있다. 과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강직한 안보통인 도널드 럼즈펠드를 국방부 장관으로 중용했던 것처럼 이른바 한국판 ‘럼즈펠드’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중국 등과 외교 접촉면이 넓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정책브레인으로 모시려는 경쟁이 선거캠프별로 불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