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촛불·태극기 모두 냉정을 되찾을 때

이재용 사회부 차장





정월대보름인 지난 11일 서울 도심은 여지없이 촛불과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 찼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조기 탄핵을 촉구하는 주말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에 맞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막바지를 향해 가면서 퇴진행동과 탄기국 모두 세 불리기에 온 힘을 쏟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들 집회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넘어 헌재의 결정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퇴진행동과 탄기국 측은 촛불을 더 높이 들거나 태극기를 더 세게 흔들수록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퇴진행동과 탄기국에 따르면 이날 집회 참가인원은 각각 75만명, 21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이 공정성을 이유로 각 집회의 참가인원 수를 공식 발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주장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금 우리나라가 사상 초유의 혼란에 빠진 것은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권력을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광장에서 또다시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주장이 난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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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탄핵 인용 혹은 기각을 결정해야 하며 헌재와 사법부는 권력은 물론 대중의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판결을 앞두고 헌재가 독립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매 주말 서울 도심의 집회 풍경은 국론이 분열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이 같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끝낼 전환점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촛불과 태극기 집회 측 모두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가 나올 때까지 대규모 집회 및 헌재 앞 행진으로 헌재에 압박을 가하려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또 헌재가 자신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광장이 민의의 전달과 토론의 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 사법적 판단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면 광장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jylee@sedaily.com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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