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자의 눈] 청와대는 상사, 기업은 학생?

이종혁 사회부기자



“상사가 해야 한다고 하는 걸 학생이 압력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최순실 씨를 변호하는 이경재 법무법인 동북아 변호사가 지난 13일 최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직권남용 재판 도중 던진 질문의 일부다. 상대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이소원 사회공헌팀장. 그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했으며 2015년 10월 말께 청와대를 네 차례 찾아 실무 회의도 진행했다. 이 팀장은 이날 법원에서 청와대의 압력을 자신이 직접 받지는 않았다면서도 청와대가 재단에 출연할 기업부터 사무실 위치까지 세세히 지시했고 그걸 압력이라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 변호사의 질문은 이런 증언에 대한 반문(反問)이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탄생 과정에 청와대가 유별날 정도로 깊숙이 개입한 것은 이미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재판 현장에서 기자에게 충격을 준 건 청와대를 ‘상사’로, 전경련과 기업들을 ‘학생’으로 묘사한 이 변호사의 현실 인식이다. 청와대는 전경련에 미르재단을 2015년 10월27일까지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재단 출연 기업은 직접 고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경련과 기업들은 재단 이사진에서 빠지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재단 사무실은 서울 강남에 두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변호사는 이 모든 요구를 당연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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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의 본질은 결국 한국의 고질병인 정부와 기업의 구시대적 유착관계다. 정부가 규제라는 채찍과 특혜라는 당근을 무기 삼아 기업들에서 돈을 뜯어냈고 그것이 일개 시민인 최순실에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최순실·안종범 재판은 이 병든 관계를 규명하고 해소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도리어 옹호자로 나섰다.

이 팀장이 전하는 2015년 10월23일 청와대 회의의 한 장면이다. “기업들의 재단 출연금을 다 못 걷었다고 하자 최상목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이 화를 냈다.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용우 전경련 상무를 쳐다봤더니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어느 누가 이 장면을 보면서 일반적 상사와 학생 관계라 할 것인가. /2juzso@sedaily.com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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