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경영에 사실상 모든 대선주자가 너도나도 간섭하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를 부정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들, 일자리가 늘어난들 기업이 무너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기업의 주주들의 손실과 종업원들의 실직, 나아가 국민 경제 모두에 미치는 충격을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대선주자들의 무차별적 기업 때리기를 두고 산업계는 물론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를 막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은 정치권의 권한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기업의 경영 사항에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태라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사례에서 보듯이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산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두고 “기업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려 했던 최순실 게이트발 국정혼란과 뭐가 다르냐”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 사례뿐 아니다.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최근 광주를 찾아 한 발언을 두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달 23일 문 전 대표는 광주전남언론포럼이 주최한 대선주자 토론회에 참석해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라는 광주의 큰 목표에 대해 정부가 확실히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광주에는 기아차 1·2·3·하남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이들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62만대 수준으로 기아차는 지난해 53만여대를 광주 공장에서 생산했다. 어림잡아 계산해봐도 현재 규모의 공장이 추가로 들어서야 자동차 생산량이 100만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가 한 발언이라 실제로 차기 정권에서 밀어붙일 수 있다”며 “말이 좋아 정책적 지원이지 사실상 대형 자동차 업체가 광주에 신공장을 짓도록 강요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광주 자동차 100만대 생산’이 지난 2011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내세운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광주시는 공식적으로 ‘광주 자동차 100만대’ 용어를 폐기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판단해도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다. 대신 친환경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광주 신세계 복합몰 불가론’ 역시 기업 때리기의 전형이라는 평가다. 이 시장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소상공인 보호를 들면서 신세계가 추진 중인 광주 복합쇼핑몰 입점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선 승패를 가를 핵심 지역으로 부상한 광주의 소상공인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략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소상공인과 달리 대규모 복합쇼핑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일반 광주시민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더군다나 도심 한가운데 지하5층, 지상19층의 초대형 복합몰이 들어서는 데 따라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간과했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두고 관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누가 차기 정권을 잡든 공약 실천은 정부 부처와 공무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실성 없는 공약을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하더라도 기업들이 따라올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결국 공약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사정기관과 국세청·공정위 등을 통해 재차 기업 때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태신 원장은 “글로벌 경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의 정치적 불확실성마저 커지고 있다”며 “가뜩이나 돈벌이가 줄어들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10년 15.3%에서 매년 쪼그라들며 최근에는 2년 연속 역성장했다.
/조민규·한재영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