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윤리 논란'은 옛말...美도 인간 생식세포 연구 빗장 풀었다

■美국립과학원 "유전자 편집 허용해야" 권고

'엄격한 조건 아래 연구' 전제 달았지만 '금지'는 안해

美, 中·英과 헌팅턴병 등 난치병 치료기술 경쟁 의도도

국내선 법으로 못박아 기술력 뛰어나도 제자리걸음만

지난 2015년 4월 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중산(中山)대 연구진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인간 배아 속 빈혈 유전자를 잘라 내 정상 유전자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국제 학술지를 통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세계 저명 과학자들은 ‘중국이 선을 넘었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체세포 편집은 환자 한 명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중국이 시도한 배아 등 생식세포 교정은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으로 비윤리적인 연구라는 것이다. 같은 해 12월 국제 과학자 그룹은 “인간 생식세포에 유전자 편집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며 “안전과 효능 문제가 해결되고 적절성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까지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러나 2년도 안 돼 분위기가 반전됐다. 중국이 음성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하는 등 앞서 나가자 미국과 영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그러면서 한두 곳씩 인간 배아 연구에 관한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영국은 2016년 2월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에 관한 민간 연구소의 계획을 승인했다. 세 달 뒤 일본도 ‘기초연구’라는 미명하에 인간 생식세포 편집을 허용했다.

그러자 미국 과학계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4일(현지시간) 미국 과학계도 그동안의 보수적인 입장에서 선회해 “정자·난자 등 생식세포에도 유전자 편집 기초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세계 과학계는 ‘미국의 이번 결정이 본격적인 ‘인간 유전자 편집’ 연구와 기술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기술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확신한다.

◇“과학적 진보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금지’가 해법은 아냐”=미국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이 제시한 유전자 편집 연구에 관한 합의안은 “엄격한 조건과 감시가 있다면 초기 배아 등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NAS와 NAM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의료·과학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다.


두 기관은 “실제 임신을 위한 배아 편집은 안 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유전적 난치병 치료를 위한 기초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와 생식세포를 변경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임상실험을 위해서는 △수정할 유전자가 심각한 질병이나 상태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할 것 △위험 및 잠재적 혜택 가능성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전임상·임상 데이터를 제출할 것 등 총 여섯 가지의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는 했다.

관련기사



동시에 지능·신체능력 향상 등 ‘인간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는 결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못 박았다. 지나치게 엄격한 조건 탓에 사실상 제한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NAS 측은 “‘주의’가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간 배아를 활용한 기초과학의 빗장이 풀렸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은 ‘중국·영국 등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결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미국의 다급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NAS 측은 “과학적 진보는 인간 생식세포에서 유전자 편집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며 “미국이 기술의 발전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해도 어디선가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중국을 견제했다. 또 “이번 권고안은 대다수가 윤리적으로 불가침하다고 생각한 선을 넘어선다”고 인정하면서도 “유전자 편집 연구는 국제적 협업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모든 국가의 잠재적 임상이 적절한 감시·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해 중국에 대한 감시와 규제의 필요성을 명확히 했다.

◇미·중·일 뛰어가는데 한국은 어쩌나=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간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 세포 속 비정상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삽입함으로써 불치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는 셈이다.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기술력도 문제지만 규제는 더 큰 걸림돌이다. 그중에서도 유전자 등 인간과 관련한 연구를 특정 질병으로 한정하는 생명윤리법이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다. 인간 배아에 대해 연구 목적은 물론 유전자 치료 자체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자는 “다른 나라는 가이드라인 또는 권고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법으로 묶어둬 자칫 어설픈 연구 실수가 범죄로 이어진다”며 “윤리는 중요하지만 연구의 자율성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각 연구기관들이 생명윤리위원회(IRB)를 두고 있는 것과 별도로 연구 적합성 여부를 판정하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있다는 점도 ‘옥상옥’으로 지적된다.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툴젠의 김석중 연구소장은 “새로운 의약품·치료법을 개발할 때는 그 효용과 위험성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검토를 거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음에도 상위 법과 상위 감시기관이 있는 것은 연구자들을 옥죄는 이중 규제”라고 안타까워했다.

김경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