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300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거함인 삼성그룹이 17일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다.
눈앞에 산적한 경영 현안도 문제지만, 가장 큰 걱정은 그동안 시간을 두고 검토해왔던 경영혁신 작업, 사업구조 개편 및 투자, 인수합병(M&A) 등 이른바 그룹의 미래를 그리는 각종 ‘난제’의 표류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사업 개편 작업은 사실상 정지된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답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써는 논의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은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2014년부터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해왔다.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은 그 최종 단계로 거론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 부회장은 사업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왔다.
비주력 사업이었던 방위산업·석유화학 부문을 두 차례에 걸친 빅딜을 통해 한화와 롯데에 매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했고 바이오와 자동차 전장사업 등 새로운 영역에 집중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합병 자체가 이번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르고 이 부회장의 구속 사유로 작용한 상황에서, 이를 포함한 개편 작업은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 로드맵 구상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와 M&A 역시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한 2014년부터 약 3년간 15개의 해외 기업을 사들였다.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기업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클라우드 관련 업체 조이언트,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 비브랩스 등을 사들였다.
80억달러(9조6,000억원)를 들여 인수하기로 한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의 경우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사례로는 최대 규모다. 국내에서는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한 개 라인을 확장하려면 각각 10조원, 1조원 안팎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시설투자에 집행한 비용은 27조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 관계자는 “임기가 정해진 최고경영자(CEO)로서는 대규모 투자와 M&A를 추진하는 데 권한과 책임에 한계가 있다”며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