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삼성이 최순실 씨 측에 제공한 돈과 박근혜 대통령 직무의 관련성, 대가 관계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구속 여부를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수사 내용, 이 부회장과 변호인의 해명을 모두 검토한 결과 이 부회장을 구금해 수사할 필요를 일단 인정한 셈이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 씨와 공모한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해 왔다.
삼성 계열사가 최 씨 측 법인과 계약하거나 이들에 자금을 제공한 것은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대가라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박 대통령이 합병 찬성을 지시했고 이 부회장은 그 대가로 거액의 자금을 최 씨 측에 보냈으며 이 과정에서 회삿돈을 끌어 썼으므로 횡령도 있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특검의 이런 주장이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특검의 수사 방향에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영장 심사 때 범죄 혐의를 본안 재판 수준으로 심리하지는 않으므로 영장 발부가 이 부회장의 유죄를 시사한 것으로 단언하기는 이르다.
영장 단계에선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는 혐의 ‘소명’이 이뤄지면 된다. 반면 형사재판에서는 범죄사실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입증 정도를 기준으로 볼 때 증명은 ‘범죄사실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얻는’ 단계다. 이에 비해 소명은 ‘범죄사실에 관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유무죄 판단은 기소 후 법정에서의 증거조사, 증인·피고인 신문 등 일련의 절차를 거쳐 내려진다. 유죄 판결 확정 전에는 무죄로 추정하도록 한 헌법 27조는 이 부회장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삼성은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주거나 부정한 청탁을 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으며 구속 적부심사 청구, 기소 후 보석 청구 등으로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박 대통령, 최 씨, 이 부회장이 얽힌 뇌물 혐의 규명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으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