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전세계 저명한 기업 및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포춘과 타임이 주최한 글로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목표는 새로운 ‘사회적 협정’의 도출이었다.
아직도 전세계 수십 억 명이 소외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은 선진국 국민이 금융기관을 통해 누리는 자유로운 저축, 투자, 대출, 건설, 무역 혜택과 멀리 떨어져 있다. 전쟁과 빈곤으로 인해 무국적자 신세가 된 사람도 수천만 명이나 된다. 이 중 상당수가 아이들이다. 세계의 오지 및 농촌지역에서 최소생계비 수준으로 삶을 꾸리고 있는 이들도 수없이 많다. 일부 ‘은행 소외자’들은 인터넷·모바일 결제시스템·무담보 소액대출 같은 혁신적 변화 덕분에 세계경제에 대거 편입되었고,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하지만 선진국 번영의 원천인 금융시스템 접근이 근본적으로 차단된 사람이 아직도 매우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지난해 12월 2일 전세계 기업, NGO, 노동, 언론, 전략적 문제해결 분야 지도자 약 150명이 로마의 한 호텔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이 결의를 문서로 남겼다는 건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포럼에 참가한 CEO들이 이끄는 전 세계 직원 수는 약 500만 명에 달한다(바클레이스 Barclays, 다우 케미컬 Dow Chemical, 플렉스 Flex, IBM, 리바이스, 몬샌토 Monsanto, 노바티스 Novartis, 로열 더치셸 Royal Dutch Shell, 지멘스 Siemens,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 United Technologies, 월그린스 부츠 얼라이언스 Walgreens Boots Alliance, WPP 외 다수). 주요 컨설팅 업체(액센추어 Accenture, BCG, 딜로이트 Deloitte, 인시그니엄 Insigniam, 매킨지 McKinsey, 테니오 Teneo)의 경영인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창의성과 규모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자선단체들도 포럼에 참여했다(BRAC, 환경방어펀드Environmental Defense Fund,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국제구조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래스트 마일 헬스 Last Mile Health, 모 이브라힘 재단Mo Ibrahim Foundation, 파트너스 인 헬스 Last Mile Health,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 세이브더칠드런 등).
이들은 모두 포춘과 타임이 개최한 글로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 법적 (공인) 신분 증명이 없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들의 금융시스템 접근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저렴하고 안전한 모바일뱅킹 플랫폼의 접근성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리스크 축소와 지역적 부 축적을 위해 새로운 종류의 보험을 개발하겠다고도 서약했다. 또, 투자가 부족한 사람과 지역을 대상으로 투자자본을 크게 늘리겠다고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기업투자의 사회·환경적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물질적 지표(material metrics)’를 개발하고 보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단 하루 동안 이 모든 결의가 이뤄졌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8개 실무그룹으로 뭉친 CEO와 노동 지도자, 경영 전문가, NGO 지도자들은 총 22개의 구체적 결의를 제시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환경보호, 자사의 에너지 사용 및 환경에 미치는 부담 감축, 기후변화 대응 노력 가속화를 다짐했다. 일부 제안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세금·총량제 등 경제적 제도를 활용한) 의미 있는 수준의 탄소비용 부과를 지지하고, 소규모 자영농을 지원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과감한 수자원 관리 목표를 설정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참석자들은 지식경제 시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세계 노동력 재구성을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경제에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면서 낙오된 근로자 수백만 명에게 재교육을 제공해 (IBM의 지니 로메티 Ginni Rometty CEO의 표현을 빌자면) ‘뉴 칼라 new collar’로 성공할 길을 열어 주겠다는 것이다. 블루칼라(기술직)와 화이트칼라(전문사무직)의 구식 위계가 힘을 잃으면서 ‘뉴 칼라’ 영역은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모든 어린이가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향후 노력을 배가하고, 소녀·이민자 자녀·농촌 빈곤층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도 다짐했다. 각자의 조직 내에서 포용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도 되새겼다.
공공보건 분야에선 더욱 야심 찬 결의가 나왔다. 기업 및 NGO 지도자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빈곤이 만연한 지역에서 공동체 보건 인력 75만 명의 직업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100만 명의 아동에게 기본적인 ‘최일선’ 의료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영양실조와 백신 예방 가능 질병 등 만성 보건문제 해결하기 위해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바티스의 조 히메네스 Joe Jimenez CEO는 “전세계 빈곤층 10명 중 7명은 농촌 거주자”라는 말로 문제의 심각성을 요약했다. “지속가능한 지역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우리 몫을 다해야 한다.” 노바티스는 이를 위해 현재도 의료시설 건립에 필요한 금융, 물류, 기술, 통신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면, 우리 시대의 근본적 특징 중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선(善)’이라는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0년간 세계화와 디지털화가 가져온 광범위한 변화 덕분에 엄청난 가치가 창출되었고 많은 이가 부를 쌓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은 더욱 크게 벌어졌다.
포춘과 타임이 주최한 글로벌 포럼의 목적은 양극화 추세를 뒤집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기업의 이익과 기업이 속한 세계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본 포럼은 ‘기업은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성과도 거둘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할 기회였다.
12월 3일 포럼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축복을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런 생각을 환영했다. 바티칸 내 사도 궁전(Palazzo Apostolico)의 클레멘티나 경당(Sala Clementina)에서 교황은 “우리의 현 제도 및 경제체제 내에서 인간의 중심성과 존엄성 증진에 힘쓰는 여러분의 모든 노력에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 포럼에서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 나가길 격려하며, 우리의 현행 제도 및 경제체제를 탈바꿈시키기 위한 더욱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고 인류,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교황은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도전 과제를 그 자리에 모인 대기업 대표들에게 던졌다.
“여러분이 도우려는 사람들도 여러분의 노력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목소리를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분들을 형제와 자매, 아들과 딸,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아야 한다. 시대적 도전 과제 속에서, 여러분이 진실한 마음으로 도우려는 사람들 또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과연 전 세계 기업들이 이 같은 과업을 해낼 수 있을지, 포춘은 계속 지켜볼 것이다.
▲ 래스트 마일 헬스의 라지 판자비 CEO.
의사인 그는 모국 라이베리아에서 지역의료 인력 수백 명의 교육을 지원했다. 공공보건 전략의 비용 대비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록펠러 재단의 주디스 로딘과 노바티스의 조 히메네스 CEO.
세계 보건 실무그룹의 의장을 맡은 히메네스는 “전 세계 빈곤층 10명 중 7명은 농촌 거주자”라고 지적했다.
▲ 가비백신그룹의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이사회장.
전 세계은행 관리이자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을 역임한 이웨알라는 참석자들에게 세계화로 인한 “실패와 낙오자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 포춘의 니나 이스턴(왼쪽)과 함께한 세이브더칠드런의 헬레 토르닝-슈미트와 국제구호위원회의 데이비드 밀리밴드.
밀리밴드는 “인도주의 분야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문제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기부 시스템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있어 큰 규모로 발전하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포춘의 앨런 머리(왼쪽)와 함께한 LRN의 창립자 겸 CEO 도브 세이드먼.
세이드먼은 “우리는 ’근접한 세계‘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깨어 있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들의 고난, 문제, 분노, 고통, 행동을 직접적이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Clifton Le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