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휴정PD의 Cinessay-굿 윌 헌팅] “네 잘못이 아니야”...인생을 바꾼 한마디





데뷔한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A씨는 부와 인기를 다 가졌다. 화려한 모습과 당당함이 트레이드 마크지만 A씨는 식당에 가면 늘 과하게 주문을 하곤 했다.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많이 굶었어. 그래서 지금도 식당 차림표만 보면 다 먹고 싶고 그 맛이 다 궁금해.”

비빔밥, 갈비탕, 냉면… 백번은 더 먹어봤을 그 평범한 음식들이 아직도 궁금하고 먹고 싶다는 A씨의 고백을 나는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산다. 그림 같은 여행지의 풍광 속에서, 낮잠 속에 섞여 들어오는 골목길의 소음 속에서, 공원에서 맞닥뜨린 한 가족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상처가 ‘훅!’ 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함께 사는 가족들도 어쩌면 눈치채지 못했을 결핍과 아픔을 우리는 조용조용 달래가며 나이 들어간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걸까, 크게 성공한 사람이나 천재들을 보면 그 상처도 깊다. ‘굿 윌 헌팅’(1997년작, 구스 반 산트 감독, 맷 데이먼, 밴 에플렉 각본)의 윌도 그렇다.

MIT공과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맷 데이먼)은 겉으로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사고만 치는 문제아지만 사실은 수학·법학·역사학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천재다. 어느 날 램보 교수가 공개적으로 낸 어려운 수학 문제를 윌이 쉽게 풀어내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램보 교수는 그를 제자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매사 삐딱한 윌을 다루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램보 교수는 여러 전문가를 동원해 윌을 정상화(?)시키려 한다. 그럴수록 윌은 더욱 마음의 문을 닫고 램보교수는 마지막으로 오랜 친구이자 심리학 교수인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윌을 부탁한다.


윌과 숀은 첫 만남에서 불편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숀은 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지해주는 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윌. 어린 시절, 양부의 폭력에 고통당하면서도 늘 자신을 책망했던 윌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숀의 깊은 위로는 꽁꽁 묶어놨던 윌의 분노와 슬픔을 극적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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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캐스팅돼야 하는 존재다. 혼자서는 살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윌은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일단, 윌에겐 척(밴 에플렉)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외면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윌에게 “너는 복권에 당첨되고도 돈으로 못 바꾸고 있는 거야”라며 자극을 주는 척이야말로 윌에겐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다. 친구의 뛰어난 재능과 미래를 질투하지 않으면서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친구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윌을 변화시킨 숀 교수가 있다. “너는 지식은 있으되 삶의 깊이는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 오만이 가득한 겁쟁이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완벽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뿐”, “힘든 일이 닥치면 평범했던 날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지”

숀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두려워하는 윌의 방어 본능과 연약한 마음을 서서히 치유해줬다. 그가 없었다면 윌은 아직도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생님이 아니어도, 최고경영자(CEO)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캐스팅할 수 있다.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조언, 그리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새로운 만남이 예약되어있는 봄, 3월이 온다. 그토록 간절히 일어나길 소망했던 멋진 삶의 변화를 나에게,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기에 참 좋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휴정 PD, KBS1 라디오 ‘함께하는 저녁 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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