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북한 측은 내용과 무관하게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7일 밤 갑작스레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A4 세 페이지 분량의 회견문을 통해 그같이 밝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김정남 피살 수사 과정에서 북한 측의 체면을 세워주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강 대사가 말레이시아를 ‘적대세력과 야합한’ 국가로 몰아세우면서 부검결과 발표 때는 양국관계 파탄을 협박하자 당황해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부검결과 발표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이며, 적절한 때 발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듯하다.
거슬러가 보면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이 독극물 피습으로 사망하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닷새간 현지 북한 대사관과 협의를 거쳐 시신 확인, 부검, 진상규명, 시신 인도 등의 처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이 막무가내로 부검 반대와 시신 인도를 요구한 데 대해 말레이시아는 부검과 진상규명은 당사국의 권리라는 점을 들어 적법 대응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독극물 테러에 의한 사망이라는 김정남 시신 부검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이자 북한이 거칠게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강 대사가 전날 발표한 회견문을 보면, 김정남 피습 사건 이후 긴박했던 양국 간 신경전을 잘 읽을 수 있다.
우선 북한 국적의 김정남이 피습된 직후 북한 대사관에 정식 통보된 것으로 보인다.
강 대사가 회견문에서 “말레이시아 측은 애초 북한 주민(김정남)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우리 대사관에 통보하면서, 그가 실제로 북한 인민인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다.
강 대사는 이어 “외교관 여권 소유자이자, 영사보호 대상이란 이유로 (김정남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거부했음에도 말레이시아 측은 우리의 허락이나 참관 없이 부검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강 대사의 이런 언급을 통해 15일 김정남의 시신에 대한 부검에 북한 측은 참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신 부검에 북한 대사관의 직원이 있어야 했으나, 참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일 강 대사를 비롯해 현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대거 영안실에 갔지만, 부검 반대를 재차 요구하며 부검 참여를 거부한 것이다.
북한의 강한 반대 속 말레이시아의 부검 강행 이후 양국관계는 급랭했다.
이어 북한은 자국 영사의 미참여를 이유로 ‘부당한’ 부검이라며 서둘러 시신 인수를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은 말레이시아 외교부를 통해 시신 인도 관련 서류를 현지 경찰에 전달했지만, 이후 하루가 넘도록 답을 받지 못했다.
강 대사는 17일 오후 말레이시아 경찰청을 방문해 즉각적인 시신 인도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면서 “이는 말레이시아 측이 우리를 악의적으로 해(害)하는데 필사적인 적대세력과 야합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복잡한 내부 문제를 잠재우려고 각종 채널을 통해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우리는 말레이시아가 우리 공화국에 적대적인 세력과 야합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전혀 참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지에선 강 대사의 심야 성명 발표의 진의가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의 부검결과 발표 저지에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의 이런 반발을 의식해 18일 재부검을 한다는 현지 언론매체들의 보도가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