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복수전공 학위를 마치고 중국 유학도 다녀왔지만 농업인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취업이 안되서 혹은 단지 농촌에 살아서 농사를 지을 것이란 편견에도 맞서고 싶었다. 신세대 농군 유지혜(32·사진)씨는 그 힘든 농사일을 왜 선택했느냐는 불편한 시선들을 향해 “청년들이 농업에서 희망과 비전을 찾을 수 있고 도전해 볼만한 분야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는 고향 전북 김제 진봉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공동으로 논 27㏊(약 8만평)에서 벼와 밀을 재배한다. 직접 생산한 쌀과 밀로는 빵·쿠키 등을 만들어 ‘바람난농부’란 브랜드로 판매한다. 이앙기, 콤바인, 트랙터 등을 직접 운전하는 덕에 5~6월 농번기에도 가족 3명이 거뜬히 꾸려나가고 있다.
외동딸에 유학까지 다녀온 젊은 여성이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하자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을 어른들이 대다수였다. “어릴 적부터 농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신문방송·중어중문을 복수전공한 후 2년 동안 마을 인근에서 학습지 교사로 취업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여자도 농사를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켰습니다. 남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2010년 농부의 길로 들어선 후 자경과 임대 경작지를 조금씩 늘리며 이제 농사일에 잔뼈가 굵었다. 농외 소득을 올리기 위해 지난해 봄부터 직접 공방에서 만드는 빵·제과류도 SNS를 통해 소문이 나면서 주문량이 늘고 있다. 올해 본격적인 온라인 판매도 계획하고 있다는 그는 “소규모 창업처럼 광고홍보에 엄두를 못내는 농업에도 SNS는 판로를 여는 좋은 도구”라고 설명했다. 농업을 제조·서비스로 영역을 넓히는 개념의 6차산업화는 청년농민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그는 “처음 시작하는 청년농민들은 대부분 자본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귀농·귀촌 정책자금만 노리는 먹튀를 가려내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에게 자금과 판로개척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유씨처럼 농사에 뛰어든 여성 청년농민들끼리 힘을 모으기 위해 지난해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가 출범했고 유씨가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전국적으로 가입의사를 밝힌 청년여성농민이 아직 50여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오는 3월 정기총회를 열고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유씨는 현재 공방 위에 아이들이 우리 밀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공간을 만들고 있다. 체험학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마을을 홍보하고 지역 판로도 개척하기 위해서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이곳에 사회적 기업을 세우고 청년,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 쇠락하는 마을 경제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부농이 아니라 농민들이 두루두루 잘 살사는 게 소망”이라며 “농업에도 기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사진제공=대산농촌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