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잇따라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와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반도 주변국 간 외교장관회의에서 강한 충돌음이 들려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중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과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놓고 충돌했고 미국은 중국을 향해 “북한을 진정시키라”며 돌직구를 던졌다. 러시아는 다음달 열리는 한미연합훈련에 미군의 전략자산이 총출동하는 데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일본은 부산 소녀상 설치를 문제 삼아 한국에 유감을 표시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번 주요국 외교장관 접촉에서 이처럼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함에 따라 향후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는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한 “사드보복 유감”에 중 “배치 서두르지 말라”=뮌헨안보회의에 참가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8일(이하 현지시간) 뮌헨 메리어트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 항의했다. 윤 장관은 경제·문화·예술 등 각 분야에서 보복성 조치가 나오는 데 대해 “강하게 우려한다”고 말하고 “중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왕 부장은 “사드 보복에 중국 정부는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 국민의 정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고는 “사드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왕 부장의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한국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차기 정권에 이 문제를 넘기라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중, 북한 문제 해결 적극성 보여야”=한미는 중국을 향해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압박했다. 대북 제재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어 국제사회가 아무리 강하게 북한을 압박해도 중국이 소극적일 경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7일 본에서 왕 부장을 만나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안정을 저해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시키라”고 촉구했다. 틸러슨 장관의 이날 발언은 “중국의 보다 강한 압박을 이끌어내 북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전날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내용을 왕 부장 면전에서 직접 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날 한미일 외교장관은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미국이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때문에 틸러슨 장관이 왕 부장에게 한 말은 ‘중국이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하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때마침 중국 상무부는 “유엔 대북 제재 결의의 이행을 위해 19일부터 올해 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이고 전체 중국 수출에서 4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외화벌이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가 중국에 원하는 것은 보다 강하고 직접적인 북한 압박이다. 반대로 중국은 한미의 사드 배치 문제로 감정이 상해 있어 한미와 중국의 의견 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냉랭한 분위기의 한일 회담=한국과 일본은 이번 다자회의에서 북핵·미사일 해결에 대한 뜻은 일치했지만 최근의 양국 외교 경색을 푸는 데는 실패했다. 17일 열린 양자 외교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부산 소녀상 문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문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윤 장관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일본의 교과서 제작 기준인 학습지도요령에 명기하려고 하는 일본 측 움직임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9일 부산 소녀상에 항의하며 본국으로 돌아간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의 복귀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8일 뮌헨에서 윤 장관과 만나 “한미연합군사훈련 때 미국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미의 북한 군사 압박 강화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에 윤 장관은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거듭 호소했다. 윤 장관은 18일 뮌헨안보회의 한반도 세션에서 “북한은 핵 무장 최종 단계에 근접하고 있다”면서 “북핵 문제는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며 임계점까지 한두 해밖에 남지 않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북핵을 방치하면 머리 위에 ‘다모클래스의 칼(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과 같은 북한의 ‘핵 검’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각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