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60년의 통한, CF-105 전투기






‘아예 CF-105가 더 낫다.’ 미국 록히드 마틴사가 개발하던 F-35 전투기의 성능에 의구심이 일기 시작한 지난 2010년, 캐나다에서 나온 주장이다. 일찌감치 F-35 전투기 개발 국제협력 프로그램에 참가한 캐나다에서 왜 이런 혹평이 나왔을까. 하긴 사업 초기인 2006년부터 F-35 무용론이 없지 않았다. 속도가 느리고 작전반경도 짧은 F-35 전투기는 국토가 넓은 캐나다의 작전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 정부의 강행으로 사업은 지속됐어도 F-35 개발이 지연되자 회의론이 더욱 번졌다.

놀라운 점은 미국제 F-35 전투기 도입을 포기하는 대안의 하나로 CF-105 전투기가 제시됐다는 사실. 캐나다 예비역 공군 장성들을 중심으로 ‘CF-105 부활론’이 일었다. CF-105 애로(Arrow ·화살) 전투기는 캐나다가 1953년부터 개발을 추진했던 순국산 초음속 전투기.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성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가격이 비쌌다. 사업비 증가와 미국의 견제에 맞닥뜨린 캐나다 보수정권은 1959년 2월20일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사업이 취소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다시 개발하자는 논의가 나올 정도로 CF-105 전투기의 성능은 당대 최고였다. 과연 캐나다가 미국제 F-35 전투기 도입을 포기할지는 아직도 미확정이지만 캐나다 정부가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다. ‘F-35 전투기 도입 취소의 대안으로 CF-105 전투기를 재개발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지난 2012년 발표했다. 지금껏 F-35 전투기 도입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해온 캐나다 정부가 공식 발표에 나선 이유도 CF-105 전투기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자부심, 통한과 미련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1950년대 국산 전투기 개발에 나선 이유는 소련의 위협 때문. 소련의 전략폭격기를 막을 요격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1953년부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영국과 미국의 각종 군용기를 면허 생산하면서 다져진 경험과 생산기술을 자신했으나 막상 첫 문제는 외부에서 왔다. 탑재 예정이던 영국제 제트 롤스로이스 엔진 개발이 취소되는 통에 엔진까지 직접 만들었다. 캐나다가 개발한 국산 엔진(이쿼로이엔진)도 예상을 뛰어넘는 성능을 뽐냈다. 이쿼로이 엔진을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B-47에 장착하는 실험을 담당했던 미 공군까지 그 성능에 놀랐다고 전해진다.



엔진뿐 아니라 CF-105 전투기는 안과 겉 모든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기체도 컸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주력 폭격기였던 B-17보다도 길이(23.71m)가 길었다. 대형 기체여서 각종 장비를 얼마든지 탑재할 수 있었다. 무장도 기체 내부에 실었다. 레이더에 작게 표시되는 스텔스 성능 때문이 아니라 공기저항을 최소화시켜 고속을 내기 위한 내부 무장창은 어뢰까지 적재할만큼 넓었다. 대형 삼각날개는 저고도에서의 운동성을 떨어뜨렸으나 소련 폭격기를 요격할 고고도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전투기를 기계조작이 아니라 전자신호로 조종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도 초보적이었으나 20년 이상 시대를 앞섰다.


개발 및 제작사인 아브로 캐나다(Avrro Canada)가 제시한 청사진은 ‘환상’에 가까웠다. 기체뿐 아니라 엔진 개량 사업도 지속할 생각이었던 아브로 캐나다사는 출력 향상형 개량 이쿼로이 엔진을 장착한 CF-105 Mark Ⅲ 이후 기체는 마하(음속) 3배 이상의 속도는 물론 고고도 진입이 가능하다고 선전했다. 마하 3이 넘는 속도 때문에 1970년대 후반까지 서방 진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구 소련제 미그-25 전투기와 비슷한 설계 개념을 20년 전에 구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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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돈. 예정에 없이 엔진까지 개발하고 각종 첨단 장비 채택으로 예산이 불어났다. 처음에는 대당 200만 달러로 책정한 가격이 최소한 300만~350만 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1957년 새로 집권한 보수당 정권은 사업 자체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가격이 1,200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돌았다. 캐나다 국방위원회가 사업 취소를 막으며 시간을 버는 동안 아브로 캐나다사는 외국과 공동 개발을 모색하고 나섰다. 생산 단가 하락과 판로 확보를 위해서다.

먼저 미국과 프랑스, 영국이 관심을 보였다. 미국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초기 사업을 도왔다. 마하 2급 전투기를 이미 띄워 놓은 미국은 엔진 시험과 고성능 컴퓨터를 통한 기체 설계 변형에도 조력했다. 막상 미국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을 빼고 오히려 견제구를 날렸다. 보수당의 디펀베이커 총리가 1957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미국제 CIM-10 보마르크(Bomarc) 대공미사일을 도입한 1957년부터 미국과 캐나다는 캐나다 영공 방위에 고고도요격 전투기(CF-105) 대신 미사일을 투입한다고 사실상 합의한 상태였다.

프랑스는 이쿼로이 엔진에 관심을 가졌다. 미라주 Ⅳ 폭격기용으로 300대 구매를 타진하다 자국 항공산업 보호를 위한 국내 개발로 방향을 돌렸다. 영국 공군은 온전한 기체를 144대를 구매할 수 있다며 캐나다의 연구 의욕을 북돋았다. 반드시 영국제 엔진을 써야 한다는 전제는 있었지만 단가도 높게 제시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1959년 1월, 공동 연구는 지속하기를 원하지만 기체를 구매할 수 없다는 최종 답신을 보내왔다. 기술에만 관심 있을 뿐 완제기는 살 수 없다는 얘기였다.

캐나다 정부가 사업 취소를 종용하는 가운데 기대했던 영국의 주문이 무산된 지 1개월 만에 캐나다 국방위원회도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었다. 디펀베이커 총리가 미국의 압력과 농간에 굴복해 항공산업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각계의 항의에도 캐나다 정부는 사업 취소를 전격 발표했다. 사업 취소 발표일(1959.2.20)은 캐나다 항공 산업사에서 ‘검은 금요일(Black Friday)로 남았다. 캐나다 정부는 사업을 취소하며 완제품 시제기 CF-105 Mark Ⅰ(미국제 엔진 장착) 다섯 대와 98% 가량 제작된 CF-105 Mark Ⅱ는 물론 설비와 치공구를 완전히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대 최고의 전투기와 제작 기술, 제조 공정의 유출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CF-105 프로젝트 취소 4개월 뒤 디펀베이커 총리는 미국제 F-101전투기 도입 계약을 맺었다. CF-105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져 후보 기종에서 배제됐던 전투기를 다시 올린 것이다. 디펀베이커 총리의 캐나다는 이 결정으로 돈을 절약했을까. 천만에. 디펀베이커는 미국제 전투기 도입이 싸다고 강조했으나 나중에 도입 물량이 두 배로 늘어나 CF-105 개발만큼이나 부담이 커졌다. 보마르크 미사일 도입 비용까지 합치면 지출 규모는 더욱 크다. 캐나다 자유당 정권의 20년 집권을 물리치고 보수당을 절대 다수당으로 만들었던 디펀베이커는 CF-105 사업 취소를 둘러싼 논란을 시작으로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었다.

캐나다가 속으로 입은 피해는 셈하기도 어렵다. 살 길이 막막해진 아브로 캐나다사는 직원 1만4,528명을 해고했다. 연관기업 종사자 1만5,000명도 직업을 잃었다. 마침 캐나다의 ‘번영의 50년대’가 끝나가던 무렵, 경제난이 예상보다 깊어졌다. 핵심 기술자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빠져나갔다. 미국의 아폴로, 쥬피터 계획은 물론 보잉과 록히드마틴 등의 개발팀으로 흩어졌다. 캐나다는 아직도 중형 항공기 부문에서 손꼽히는 강자이지만 전투기 독자 개발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졌다.

극적인 요소가 많아서인지 CF-105 전투기가 ‘전설’에서 뛰쳐 나와 5세대 전투기로 환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지만 실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투기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소프트웨어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산 유명 핸드폰 브랜드의 애플리케이션이 국산 핸드폰보다 많은 것처럼 개량과 운용 노하우가 전투기의 성능을 결정하는 게 추세다. 전투기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은 항공산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잡는 모험을 펼치고 있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의 순항을 바란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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