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기점으로 박영수 특별검사와 청와대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두고 칼자루를 쥐고 있던 청와대는 다급해진 반면 특검은 다소 느긋한 모양새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특검은 수사 개시 이후 처음으로 20일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불러 조사했다. 안 전 비서관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14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후 3개월 만이다. 그는 이재만(51) 전 비서관과 정호성(48) 전 부속비서관 등과 함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대통령 최측근 인물이다.
특검은 이날 “(안 전 비서관을) 비선진료와 관련한 참고인으로 조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안 전 비서관 소환 조사를 두고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안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데다 ‘비선진료’ 의혹을 입증하는 열쇠를 쥐고 있어서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가 이날 “안 전 비서관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점도 청와대 압박전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안 전 비서관 소환 조사는 특검이 지금까지 손대지 못한 수사까지 수사 영역을 확대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만큼 특검 수사에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두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던 특검이 공세로 돌아선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구속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부회장 진술에 따라 박 대통령의 운명이 갈릴 수 있는 터라 청와대 측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 부회장 구속에 이어 특검 수사기한 연장과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이 맞물리면 박 대통령 기소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은 급할 게 없는 만큼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소장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청와대와 박 대통령 대면조사 시기나 방식 등을 조율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은 수사기한 연장을 둘러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줄다리기’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이 부회장 구속으로 기간 연장에 대한 명분이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아직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 등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황 대행에게 한층 적극적으로 수사기한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검이 이날 공개적으로 황 대행에게 “수사기간 연장을 빨리 결정해달라”고 촉구한 점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