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타당성조사도 않는 ODA...최순실 먹잇감 될 만했다

본지, 실태평가 보고서 입수

2015년 사업조사 45% 그쳐



우리 정부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절반가량이 제대로 된 사전검증 없이 집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DA 사업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다. 전문가들은 ODA 사업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2의 최순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가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ODA 사업 시행기관의 사업 발굴 실태 평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ODA 사업 타당성 조사를 시행하는 비율은 지난 2015년 45.5%에 불과했다. 총예산 규모가 2조6,359억원에 이르는 사업의 절반이 제대로 된 사전검증도 없이 추진된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ODA를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이 발주했다.


심지어 타당성 조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 개발 컨설팅과 프로젝트성 사업조차 조사 시행률이 각각 60.4%, 87.6%에 그쳤다. ODA 주요 시행기관인 외교부를 제외한 다른 부처와 기타 시행기관의 경우 37.7%, 54.7%로 더 낮았다.

개발 컨설팅과 프로젝트 사업은 규모와 중요성이 커 ‘무상원조 시행계획 시행지침’에서 타당성 조사를 필수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안전행정부·문화체육관광부·환경부·국토교통부·법무부·국민권익위원회·특허청은 이들 두 사업에서 타당성 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ODA 사업에는 초청연수 등 규모가 작은 사업도 많은데 이들은 타당성 조사를 할 필요가 적어 전체 시행률이 낮은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은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모가 작은 사업도 효과를 내려면 간단한 수요조사 방식의 타당성 조사라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관이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ODA 사업 심사체계도 주먹구구다. ODA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무상원조의 경우 외교부가 여러 부처에서 요청한 사업을 1차적으로 심의하는데 각 기관의 반발 때문에 타당성 조사 미시행 등 결격사업도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한 ODA 전문가는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아도 별다른 벌칙 규정이 없어 부처들은 제대로 사전검토를 안 한 사업도 ‘배 째라’ 식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모든 ODA 사업은 최종적으로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국가개발협력위원회’에서 시행 여부를 확정한다. 그러나 국개위의 국무조정실 담당 직원은 10명 정도에 불과해 1,200개가 넘는 사업을 심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개위에서 확정한 내용도 기재부 예산심의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있어 컨트롤타워로서 국개위의 역할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재부는 국개위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배제한 사업들을 임의로 되살렸다가 2015년 감사원 주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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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심사체계는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중복된 사업이 걸러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개위에 따르면 올해 ODA 사업은 요청 건수 1,400건 중 88.8%인 1,243건이 확정됐다. 웬만하면 요구대로 승인받는 셈이다.

국개위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늘리려고 경쟁적으로 ODA 사업을 늘리는 추세”라며 “장관이 개발도상국을 방문해 선물 주듯이 충동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통과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업시행 과정의 입찰에서 단독계약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사업시행 이후 모니터링·평가도 부실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언론 등의 감시도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최순실처럼 손쉽게 이권을 챙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최적의 먹잇감인 셈이다. 최씨는 코리아에이드·소녀보건 등 사업에 자신이 사실상 소유한 미르재단·플레이그라운드 등 기관을 개입시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가 직접 기획한 코리아에이드는 아프리카 난민에게 한류 콘텐츠를 보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사업으로 “난민에게 한류를 홍보하는 게 무슨 ODA냐”는 비판에도 국개위를 통과했다.

ODA를 전문 감시 시민단체인 ‘발전대안피다(옛 ODA워치)’의 한재광 대표는 “ODA 사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최순실과 같은 비리는 물론 수조원의 혈세 낭비와 국가 이미지 추락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타당성 조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사업발굴 단계부터 범부처 차원에서 협의해 정말 될 만한 사업만 기획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경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일본이나 영국처럼 ODA에 전문성이 있는 한 기관에 사업을 전담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ODA 사업에서 문제가 지적된 사안에 대해서는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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