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20년 가까이 기억 속에 봉인돼 있었던 노래가 포켓몬고(Pokemon Go)를 시작하면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잡고 있던 포켓몬 꼬렛이 희귀템(희귀한 포켓몬) 메타몽으로 변신해 도감에 자리잡았을 때도 롱스톤을 잡느라 애써 기다린 버스를 놓쳤을 때도 신이 났다. 야생 포켓몬이 많다는 임진각까지 가보기도 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출시 이후 3주 남짓한 포켓몬고 허니문 기간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첫 좌절의 시작은 포켓몬고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다. 그때까지 기자의 포켓몬고 세계는 ‘희귀템’과 ‘흔템(흔한 포켓몬)’이 있을 뿐이었다. 보유한 포켓몬 중 능력치가 높았던 마그마와 나시에 주력하며 자산에 해당하는 별의 모래와 사탕을 탕진해가면서 이들을 강화했다.
하지만 친구가 똑똑하게 게임하라고 알려준 ‘IV GO 앱’을 깔아보니 그동안 잡은 수많은 포켓몬 중에 S등급이 하나도 없었다. 이 앱은 포켓몬 개체의 종합적인 능력치를 분석해 최대치로 성장할 수 있는 등급을 알려준다. 그 친구는 타고난 등급은 강화나 진화로도 바꿀 수 없다며 S등급 아래로는 다 버려도 된다고 막말을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동안 잡은 110가지 다른 이름의 포켓몬들이 모두 다 ‘쓰레기’였다니…. 이후 개발사 나이앤틱에서 이 앱의 사용을 불허했지만 그때부터는 등급이 높은 포켓몬만 찾게 됐다.
위성항법장치(GPS)를 조작하는 사람들도, 포켓스톱에 가지 않고도 몬스터볼을 무한대로 얻을 수 있는 치트키가 있다는 것도 아무리 해도 저런 사람들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미 포켓몬체육관에 승자가 돼 있는 트레이너들이 가지고 있는 포켓몬은 너무 강해 보였고 기자처럼 소소한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빠져서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는 등 시간을 쏟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설 곳은 없었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무엇보다 친구나 지인과 대결을 하면서 키우는 파트너 포켓몬의 실력을 겨루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했다. 누군가와 대결을 통해 만족감을 얻거나 어떤 특정 상황에서 퀘스트(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에 익숙했던 탓도 있다. ‘단순하다’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포켓몬을 잡을 때마다 알에서 포켓몬이 부화할 때마다 인증샷을 단체방에 공유하는 일도 어느 순간 줄어들었다. 주변에 망나뇽을 눈앞에서 놓치고 포켓몬고에 흥미를 잃었다는 사람, 집 근처에 포켓스톱이 없어서 그만뒀다는 사람, 2세대 포켓몬이 아쉽다는 사람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렌타인데이 이벤트로 온 세상이 핑크계열 포켓몬 삐삐와 내루미로 도배됐을 때도 2세대 포켓몬으로 업데이트가 되면 더 재밌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버텼다. 하지만 지난 주말 만난 2세대 포켓몬들은 이전에 알고 있던 포켓몬이 아니었다. 포켓몬이라고 하기엔 너무 세련됐고 초등학교 때 만화를 보며 꿈과 희망을 함께 키워온 그들이 아니었다.
앱와이즈가 안드로이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시 첫주(1월 23일∼29일) 698만명에 이르렀던 포켓몬고 사용자는 3주 만인 지난 13∼19일 20%가 감소한 563만명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끝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때 포켓몬을 잡으러 임진각까지 갔던 기자도 이젠 활성사용자와 비활성사용자 사이를 오가며 혹시나 모를 ‘배틀모드’ 도입을 기다려본다.
/정혜진·이종호기자 made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