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똑똑한_직장생활 가이드 ‘플랜 Z’] <13> 열등감과 자신감은 같은 뿌리의 감정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한참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세상 무너질 듯 울고, 별거 아닌 일에 연쇄적인 리액션으로 배를 붙잡고 웃곤 하던 시절. 열렬하게 삶을 찬양하기도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절망하고 쉽게 낙담도 했던 시절. 내가 ‘최씨’라는 사실이 너무 맘에 안 들었다. 한없이 여려 보이고, 지나가는 바람 한점에도 스르르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청순가련한 소녀 이미지를 지향하던 당시의 나에게, ‘최’씨라는 성씨는 도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미지였다. ‘최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는 사회적 통념은 통곡할 정도의 슬픔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가려내 버티던 나에게 엄마는 ‘아이고 저 최씨 고집’이라는 한마디로 투쟁 의지를 순식간에 꺾어 놓곤 했다. 억울했고, 속상했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극복 불가능한 열등감으로 어린 마음 정중앙에 자리 잡았다.


단단하게만 느껴졌던 그 감정의 선은 어느 날 엉뚱하고 다소 어처구니없이 깨졌다. 혜성같이 등장하며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다 빼앗아 버렸던 탤런트 최진실씨의 출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광고 카피 한줄과 함께 한없는 귀여움과 깜찍함은 모든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성씨가 같은 ‘최’씨 였고, 더욱더 놀라운 점은 대중 누구도 성 따위에 신경쓰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발견이었다.

‘이런 세상에, 사람들 생각이 다 변했나 보다. 아무도, 그녀조차도, 전혀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네’ 그날 이후 나의 사춘기를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어리석은, 그러나 나름대로 매우 심각하고 질척했던 스스로가 규정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의 성씨를 나름의 차별 경쟁력으로 여겨 자랑스러워 하는 정도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이야기이다. 정말 그런 것에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어릴 적 경험을 통해 열등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으며, 이후로 그 교훈들은 여러 사회 경험을 통해 확인되고 한층 더 강화되었다.

첫째, 열등감은 완벽하게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회적 통념의 희생자라며 스스로의 열등감에 대단한 무게를 두려 했지만, 결국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이 약간의 외부적 자극으로 한층 더 강화된 스스로가 창출한 편견에 불과했던 것이다. 주관적이기에 더 커 보이고, 더 특별했지만,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리 중요하거나 심각하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둘째, 그토록 숨기고 싶고 누가 알까 두려워하던 열등감이라는 존재는 공개되고 공유될수록 그 부피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출신학교가 대단치 않아 감추고 싶어 하던, 극구 피하고 싶은 부모님과 집안 이야기이던, 못생긴 이마가 미워 꼭꼭 숨기고 다녀야만 하는 일이던, 그 열등감에서 느껴지는 부담감과 무게감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버리고 공개됨으로써 느끼는 해방감이 훨씬 더 크고 괜찮은 경험이 된다. 공유되는 순간, 그 사실은 더 이상 은밀한 비밀이 아닌, 그냥 나의 특질 중 하나가 되는 것이고, 나를 지배하기보다 내가 지배할 수 있는 팩트 중 하나에 불과해진다.


셋째, 사람들은 타인의 열등감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점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는 않을까, 흉을 보며 편견을 갖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감추려 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어머, 그랬었나? 몰랐네….’ 한두 마디 이렇게 오가는 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충분이 바쁜 우리들은 타인에 대해 놀랍도록 무감각할 수 있다.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주변 타인들이 아닌 주인공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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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열등감은 나아가 자신감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부모의 무기력한 모습이 부끄러웠다면 죽을 힘을 다해 성취하려 노력했을 것이고, 그렇게 얻게 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이 자신감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무섭고 독재적인 아버지 밑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자랐다면 남의 말에 더 잘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를 붙잡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열등감,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열등감을 인정하자. 자꾸 숨기고 외면하려 하지 말고, 잘 들여다보고 어떤 것인지 잘 살펴봐 주자. 나 혼자 스스로 쌓아 놓은 프레임은 아닌지, 주관적인 감정으로 확대되어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아 주자. 그리고 공유해 버리자. 나의 중요한 특성으로 포지셔닝시켜 버리자. 그런 환경을 뚫고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며 나를 차별적으로 부각시키는 팩트로 활용하면 된다. 열등감에 이름을 붙여주고, 역할도 주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지도 수시로 되새기자. 어쩌면 그 열등감 때문에 오늘날 회사에 다니고 돈도 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할 일이다. 결핍을 알았기에 나아지고 싶어 노력했던 결과가 오늘이므로 열등감은 고마운 존재다. 어느 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열등감은 자신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변신해 있을지도 모른다.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myoungwha.choi00@gmail.com

최명화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마케팅 컨설턴트, LG전자 최연소 여성 상무, 두산그룹 브랜드 총괄 전무를 거쳐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상무를 역임했다. 국내 대기업 최고 마케팅 책임자로 활약한 마케팅계의 파워 우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최명화&파트너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국내외 기업 마케팅 컨설팅 및 여성 마케팅 임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인 CMO(Chief Marketing Officer)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조직에서 스마트하게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장 전략서 ‘PLAN Z(21세기북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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