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제도 등 기업의 경영권 방어 조치를 위한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 야권이 재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당정도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다만 경영권 방어 조치가 담긴 상법 개정안은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파행으로 상정이 불발되면서 사실상 2월 임시국회 내 처리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법사위에는 이날 정갑윤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상정될 예정이었다. 이 개정안은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영 방어권 제도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 경영권 보호 관련 조항도 같이 논의하자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유 부총리가 얘기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도 이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정 의원의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여야가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 연장 문제를 놓고 충돌하면서 상정 자체가 무산됐다. 현재 무소속이지만 ‘친박 책임론’에 따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정 의원은 범여권 인사로 분류된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해당 법안의 상정이 불발되면서 오는 27일로 예정된 법안심사 소위에서는 야당이 제출한 상법 개정안만 논의될 것”이라며 “정 의원의 법안은 28일 전체회의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월 국회가 3월2일로 끝나기 때문에 28일 이후에 추가로 소위 일정을 잡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관련 법안은 다음 국회에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자가 기업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취득할 경우 이사회가 다른 주주들에게 주식을 싼값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을 인수하려는 쪽은 경영권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해 인수합병(M&A) 성사가 그만큼 힘들어진다. 기업을 뺏으려는 사냥꾼에게는 ‘독약’이 되는 주식발행권을 미리 회사의 정관에 명시한다는 의미에서 ‘포이즌필(poison pill)’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이나 최대주주에게 보유 지분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미국은 적대적 M&A가 만연했던 1980년대 많은 기업의 요구로 19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다만 기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소에서는 차등의결권 주식의 상장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는 명시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리스·스페인 등은 개별 회사 차원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