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조광래 항우硏원장 "후손 위한 우주개발, 민간기업 외면 안타까워"

■서울경제신문 인터뷰

선진국 버금가는 기술력에도 투자 위험하다며 기피

정부지원 만으로는 러시아·미국 등 따라잡기 힘겨워

온갖 분야 찔끔찔끔 지원하는 '백화점식 투자' 보다

우주발사체 등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 가능성 높여야

9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광래 원장./이호재기자.9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광래 원장./이호재기자.


조광래(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29년간 로켓 개발에 몸담은 국내 최고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근래에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환갑을 넘은 30여년 경력의 러시아인 우주기술자가 상관으로부터 ‘초보자처럼 일이 서툴다’며 꾸지람을 듣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상관의 나이는 일흔다섯. 그의 우주기술 경력은 50년 이상이라고 한다. 조 원장은 “제가 우리나라에서 로켓 기술 연구를 가장 오래 한 사람으로 꼽힌다”며 “러시아에선 저보다 고수인 30년 이상 경력자도 초보자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부족한 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달 탐사 사업을 진두지휘 중인 조 원장은 22일 서울 미근동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갖고 대한민국 우주과학기술의 현주소와 지속적인 투자 필요성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대한민국은 유수의 우주과학기술 강국보다 30년 이상 늦게 우주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우주발사체(로켓) 분야의 기술력은 현재 선진국 대비 90%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위성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준(準)강국이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 경험이 있는 숙련된 전문가가 많이 부족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강국들의 우주개발에 대한 태도는 어떨까. 조 원장에게 먼저 러시아의 사례를 물었다.

그는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의 붉은광장에는 역대 서기장(공산당 최고지도자)들이 묻혀 있는데 유일하게 서기장이 아닌 사람이 한 명 묻혀 있다”며 “러시아 로켓개발의 아버지인 세르게이 코롤료프”라고 소개했다. 이 한 사례만 봐도 강국들이 우주개발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신흥 우주개발 강국인 인도에서도 자국 로켓개발의 아버지라 불려온 고(故) 압둘 칼람 교수가 지난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정도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국가지도자 중 한 명인 존 F.케네디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세계 최초로 유인 달 착륙을 위해 많은 관심을 쏟아붓는 등 우주 산업에 역점을 두었다.

조 원장은 “일본의 경우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수상이 과학기술청 장관을 역임하던 1950년대부터 자국의 미래가 우주개발에 걸려 있다고 보고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한국은 어떨까. 다행히 우리 정부도 우주개발에 점차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조 원장은 “정부가 (출연 연구기관들에) 매년 연구원 인력정원(TO)을 배분할 때 1순위로 항우연을 정하고 꾸준히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간기업들의 참여와 지원은 거의 황무지 상태다. 조 원장은 “제가 여러 국내 대기업들을 쫓아다니며 투자를 부탁했지만 대부분 외면하더라”며 “우주 사업에는 장기간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 위험도가 높아 꺼리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굴지의 대기업 2곳이 전향적으로 호응해줬지만 이후 불가피한 대내외 사정으로 사업 참여를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에서는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우주개발의 중심이 이동 중이다. 유럽에서는 민관 합동의 다국적 협력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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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척박한 투자환경 속에서 우리는 백화점식으로 모든 우주개발 분야에 찔끔찔끔 투자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조 원장의 지론이다. 그중에서도 사람과 물자 등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우주수송수단 개발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주발사체는 군사·안보적 이유로 각국이 기술 공동개발이나 수출을 꺼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꾸준히 투자해 100% 국산화를 하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제법상 우주영토는 남극처럼 어느 국가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국가가 ‘장땡(최고의 수)’”이라며 “우리도 후손들에게 우주 개척의 기회를 주려면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우주개발을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항우연은 내년 10월까지 독자개발 중인 한국형 우주발사체의 시험발사 준비를 마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하기도 힘든 로켓엔진 연소시험을 한 주에 2번씩 진행할 정도로 강행군이다. 한 연구원은 기술적 해법을 찾느라 연소기관 내부에 홀로 들어갔다가 유독가스에 중독될 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조 원장은 “우주개발에 있어서 원천기술 확보보다 더 중요한 건 연구개발 인력의 안전을 확보해 인력 손실을 막는 것”이라며 “미국·러시아 등에서도 우주개발 과정에서 대규모 인명사고를 겪은 만큼 우리도 연구원들이 열정이 넘쳐 과로하다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안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주발사체가 달에 도착해 궤도에 풀어놓을 달 탐사선의 경우는 한층 더 제작이 쉽다고 한다. 조 원장은 “달 궤도 탐사선 기술 중 80~90%는 인공위성과 중첩되는데 우리는 이미 인공위성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쌓아 개발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다만 우주자원 개발 사업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진국조차 단기간에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 원장은 “미국이 아폴로 계획 등 수차례 달 탐사 사업을 통해 여태껏 달에서 가져온 광석의 총량은 382㎏에 불과하다”며 “현재 기술로선 달의 에너지광물로 꼽히는 헬륨3와 같은 광물들을 대량으로 운송하는 것은 상업적으로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우주개발에 대한 과도한 장밋빛 과장은 경계하되 장기적으로는 상업개발을 자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토대기술들을 차근차근 확보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병도·김창영기자 do@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문병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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