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소모적인 분노의 총량경쟁이 아닌 한국식 정치·경제 질서의 확립이 절실하다.

김상철. 한세대학교 교수. 사회정책학박사

김상철 한세대 교수김상철 한세대 교수


나라의 운명이 달린 박대통령 탄핵소추의 헌재 판결이 조만간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탄핵을 찬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리와 광장의 민심으로 나뉘었고, 광장의 민심은 다시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졌다. 한류 민주주의로 미화되었던 촛불은 태극기의 등장으로 민심을 대변하는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애초에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온 촛불집회가 주춤하는 사이, 박대통령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주장하는 태극기집회는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화 되고 있다.

한 쪽은 촛불집회의 원인을 그 동안 쌓여온 사회, 경제적 불만에서 찾아, 촛불의 동력으로 탄핵과 정권교체는 물론이고, 구체제 청산과 체제 혁명을 완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한 쪽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아닌 고영태와 그 일당에 의해 기획·조작된 거짓 정보에 언론, 검찰, 국회가 놀아난 결과 탄핵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촛불의 분노와 태극기의 분노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분노의 총량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재가 어떠한 판결을 내리더라도 모두를 승복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태블릿pc와 녹취록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반대 측의 반발은 상상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판결을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특정 세력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태블릿pc와 녹취록의 검증을 포함한 가능한 수단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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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태극기 집회 참여자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탄핵의 부당함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두려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까지 진보 진영은 한국사회가 진보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말해왔으나, 보수 진영은 이러한 주장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최근의 상황은 오히려 그람시의 진지전 전술이 한국에서 성공하여, 교육, 문화, 언론은 물론 행정, 사법까지 좌파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탄핵정국과 보수 정치세력의 위축은 보수 진영으로 하여금 좌파에게 정권을 탈취 당하고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좌파정권 아래 살아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왔고, 이에 추가하여 북한의 핵도발은 한국이 제2의 월남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 결과가 조직화의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한국의 보수진영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는 갈등을 제도화하는데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기민당과 사민당의 거대 정당이 대연정을 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 그 이념적 격차가 훨씬 적다고 평가되는 한국의 정당 간에 존재하는 엄청난 적대감은 공동선보다 정파적 이익의 추구에 몰두해온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독일의 경험을 본받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동시적 발전을 위한 한국적 정치적, 경제적 질서의 창출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독점의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엄중한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할 제도가 중립성이 훼손되고 그 결과 갈등과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면 한국 사회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현재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언론·방송·포털과 사법부가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을 합의에 의해 도출하고 유지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정치세력들은 공정한 질서 안에서 싸우려는 노력보다 질서의 형성 자체를 부인하거나 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데 몰두하였고, 이로 인한 갈등비용을 우리는 너무나 혹독하게 치러왔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독일과 같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남미국가 수준으로 퇴보하는 가가 달려있다. 한국식 정치·경제 질서의 확립이 시급히 요망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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