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차이나 엑소더스’ 부추기는 중국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홍병문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중국 기업과의 경쟁 격화로 현지 시장점유율과 매출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중국 정부의 은밀한 제재 압력까지 가해져 경영 여건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베이징 주재 한국 기업인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말 중국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인은 “이름만 얘기하면 알 수 있는 한국의 한 대기업은 중국 사업에서 전면 철수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중국전략 재수정 계획을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기업은 중국의 사드 관련 압박 조치와 ‘금한령(禁韓令·한류 금지령)’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여론 악화가 결국 매출 하락과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 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은 지난 2013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로 중국에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일본의 간판 기업들은 이미 가전제품과 TV 생산 공장을 중국 기업에 팔거나 철수했다. 영국 의류 브랜드 막스앤드스펜서와 미국의 건축자재 유통회사 홈데포, 화장품 업체 레블론 등도 중국 시장의 장벽에 부딪혀 사업을 접는 수모를 겪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겼다.


‘차이나 엑소더스’ 움직임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국 최대 유리 제조업체 푸야오글라스의 차오더왕 회장은 지난해 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금 부담이 큰 중국에서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말해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차오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기업 하기 어려운 중국의 현실을 꼬집은 용감한 지적이라는 찬사도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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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인 사이에서도 중국 경영 환경 악화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니 외국 기업들은 오죽 하겠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이토록 기업 환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큰데 정작 중국 지도부는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이 투자하기에 좋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고 허울 좋은 선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고개를 내젓게 한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점점 높아지는 규제 장벽에 한숨을 쉬며 중국 당국의 이중적인 태도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실제로 주중 미국상공회의소가 최근 회원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답변 기업의 4분의1가량은 지난해 중국 사업에서 이미 철수했거나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차이나 엑소더스를 부추기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 같은 중국의 이중 잣대에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일본 기업의 뒤를 이어 짐 보따리를 싸야만 하는 것일까. 인구 13억, 세계 2위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을 공략하는 길이 장밋빛 탄탄대로일 수만은 없다. 사드로 인한 보이지 않는 엄청난 제재가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 경영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장애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 같은 리스크 요인을 핑계로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길을 돌린다면 기업 이미지는 물론 한국 국가 브랜드마저 큰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베이징 주재 일본 특파원들은 한국이 사드로 인해 압박을 받는다 해도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의 장벽과 마주하는 일본과는 비할 수가 없다고 얘기한다. 사드에 불만인 중국이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는 있지만, 과거 센카쿠 열도 논란 당시 일본에 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 기업과 관련된 기관 관계자들을 여전히 만나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드 배치가 시작되면 지금보다 더 큰 압박이 우리 기업에 가해질 것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난 장벽과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세계 최대 소비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문은 정말 닫혀버리고 말 것이다. hbm@sedaily.com

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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