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소개팅-30대 남자가 여자에 목 매지 않는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완벽한 소개팅이었다.
늘 맘에 들지 않던 화장도 그 날따라 잘 먹었다.
그런데 왜.
벌써 이틀이 지났다. 연락이 왔어도 진작 왔어야 한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소개팅 당일 헤어진 직후 왔던 이 카톡이 전부다.
1차 파스타 집. 2차로 수제 맥주집까지.
소개팅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 남자가 예약해 둔 파스타 집은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맥주도 이상하리만큼 잘 들어갔다.
꿈꿔왔던 이상형은 아니지만 순해 보이는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별말 아닌데 웃기는 재주가 있었고, 직업도 괜찮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당장에라도 소개팅 주선자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냐. 아직이야. 하루. 딱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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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뻤다.
길거리에서 만났으면 한 번은 돌아봤을 외모가 분명했다. 한 듯 안 한 듯 수수한 화장도 맘에 들었다.
“서경아, 너 낼모레면 서른다섯이여. 여자도 좀 만나야 될 거 아냐. 내 여자친구 회사 사람인데 진짜 대박 예쁘단다. 너 이거 놓치면 절대 안돼. 무조건 나가.”
3년 전 마지막 연애를 끝으로 쭉 혼자였다.
그동안 수 없이 들어오던 소개팅을 다 거절한 데는 딱히 이유가 없다. 외롭지 않았으니까. 친구놈이 소개팅 얘기를 꺼낸 건 동네 노가리 집이었다.
귀찮다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여자친구에게 소개팅할 남자를 구했다며 이미 내 번호를 넘겼단다.
그렇게 나오게 된 자리였다.
등 떠밀려 나왔지만 상대가 예뻤다.
그럼 된 거다.
소개팅은 의외로 수월했다. 생각 없이 던진 드립에도 반응이 좋았다.
한 번 더 만나볼까. 간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괜찮으시면 영화 한 편 보실래요?”
“너무 좋죠. 제가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정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월요일, 화요일까지 이틀이나 지났지만 연락은 없었다.
까인 건가.
거절당하는 데 신경을 덜 쓴 건 오래된 일이다. 상대가 마음에 들고 말고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것도 잠깐. “서경씨!” 부장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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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차였다는데요?”
소개팅을 한 지 4일째 되던 목요일. 결국 주선자였던 옆 팀 정미씨를 찾아갔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니 내가 언제. 뭐 들이대길 했어야 차든 말든 하지.
곰곰이 소개팅 당일을 되짚어봤다.
이번 주말 영화를 보잔 말을 듣긴 했다. 좋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연락이 없던 건 그 남자였다.
내가 먼저 선 톡을 하란 건가. 그건 아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남자다.
정미 씨에게 사내 메신저를 보낸다. 맘에 들었는데 연락이 안 온다는 눈치를 슬쩍 줬다. 전달은 확실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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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임마, 왜 연락을 안 해.”
연락을 기다렸던 게 잘못이었나. 몇 년 연애를 안 했더니 감이 떨어졌나 보다.
점심시간에 전화 온 친구 놈은 잔소리를 해댔다. 변명을 해봤지만 일정 확인해보고 알려주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내 잘못이란다.
귀찮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시절만 해도 연애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가 없을 때는 썸녀라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31살. 32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의 문자 한 통, 전화 안 통에 목매지 않게 됐다.
4~5번의 연애. 수없이 많았던 썸. 연애가 끝나고 썸에 실패해도 이제 아린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 그런지 생각해봐도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필요하지 않아서가 그나마 괜찮은 변명 같다.
평일에는 퇴근하면 자기 바쁘다.
조금 일찍 집에 도착해도 9시.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 한 편 보면 12시는 금방이다.
주말 역시 외로울 틈은 없다.
못 봤던 친구들을 보거나 운동을 한다. ‘불금’을 즐기기라도 하는 주면 토요일은 시체다.
사회생활에서는 꽤 인정 받는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고 월급도 늘었다.
돌이켜보면 20대 때는 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여자친구에게 기댔다. 헤어지면 세상이 끝난 것 마냥 슬펐다. 몇 번의 이별을 겪었고, 세상은 그대로였다.
죽을 것 같던 슬픔은 시간이 답이었다. 헤어진 여자친구들 얼굴은 이제 기억도 희미하다.
지금 ‘귀찮음’으로 포장된 내 모습은 그 결과인가 보다.
핸드폰을 들었다. 귀찮아도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예쁘고 성격 좋고. 귀찮음을 이기고 한 번 더 만나볼 이유는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