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올림픽’을 1년 앞둔 우리나라 선수단이 삿포로에서의 화려한 리허설로 자신감을 수확했다.
지난 19일 개막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은 26일로 8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금메달 15개·종합 2위를 목표로 221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금 16·은 18·동메달 16개로 금메달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일본(금 27·은 21·동메달 26개)에 이은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역대 최다 금메달로 14년 만에 종합 2위를 탈환했고 처음으로 전 세부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의미 있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썰매 종목이 경기장 시설과 참가국 부족으로 아예 대회 종목에서 빠진 점을 짚어보면 더 만족스러운 성적표다. 한국은 효자종목이 최강 지위를 확인하는 한편 취약종목은 잠재력을 발견하면서 평창올림픽 목표인 금메달 8개·종합 4위를 향한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포스트 김연아’ 선두주자 최다빈=‘김연아 없는 올림픽’. 체육계 안팎에서 평창올림픽을 전망할 때 가장 큰 걱정은 피겨여왕 김연아의 부재였다. 김연아로 대표되는 확실한 스타 없이 국내의 올림픽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이런 가운데 삿포로 아시안게임은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희망을 캐낸 무대였다.
김연아의 고교(수리고) 후배이자 매니지먼트사 동료인 최다빈은 ‘연아키즈 중 한 명’에서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지난 23일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를 때만 해도 일본의 홍고 리카와 불과 0.32점 차라 금메달 확률은 반반이었다. 최다빈은 그러나 25일 끝난 프리스케이팅에서 자신의 최고점인 126.24점을 찍으면서 당당히 한국피겨 사상 첫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현역 시절 부상 등의 이유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않았다. 총점 187.54점을 얻은 최다빈은 2위 리쯔쥔(175.60점·중국)을 약 12점 차로 멀찍이 따돌렸다.
최근 4대륙 선수권(182.41점)에 이어 2개 대회 연속으로 개인 최고점을 경신한 최다빈은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다음 달 말 헬싱키 세계선수권을 겨냥하고 있다. 10위 안에 들면 한국은 평창올림픽 여자싱글에 2명을 내보낼 수 있다. 현재 여자싱글 최고점은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러시아)의 229.71점. 210점은 따야 올림픽 메달을 노려볼 만하다. 최다빈한테서 올림픽 메달은 아직 멀어 보이지만 적어도 안방 잔치에서 자존심은 지킬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본선수에게 일방적 응원을 보내는 관중 앞에서 마지막 순서라는 부담마저 이겨낸 최다빈은 “세계선수권에서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효자종목 이름값 한 쇼트트랙·빙속=전통의 메달밭인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빙속)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쇼트트랙은 ‘투톱’ 심석희와 최민정이 나란히 2관왕에 오르고 부진했던 남자부에서도 금메달 2개를 보태는 등 총 8개 금메달 가운데 5개를 쓸어왔다. 빙속도 4관왕 이승훈을 앞세워 금메달 14개 중 7개를 챙겼다. 동계아시안게임 빙속 사상 최고 성적이다. ‘물귀신 작전’으로 무장한 중국의 견제(쇼트트랙), ‘빙속여제’ 이상화(은메달)의 승리욕을 자극하는 일본 고다이라 나오의 질주 등 금메달만큼 소중한 동기부여도 안고 돌아왔다.
한국의 아킬레스건인 설상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터졌다. 스노보드 이상호가 2관왕을 차지하고 스키크로스컨트리의 김마그너스가 금·은·동메달을 1개씩 따는 한편 알파인스키 정동현은 회전 종목을 제패했다. 또 역대 동계올림픽 최고 인기종목인 아이스하키는 남자가 라이벌 일본을 제치고 역대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따내고 여자는 사상 최초로 중국을 꺾는 등 변방 탈출의 신호탄을 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