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시사로 통상·무역 마찰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차기 정부를 이끌 대선주자들은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재협상 혹은 신중이란 담론 수준에서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대안에는 물음표로 일관하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수개월간 외교 공백이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찍이 대안이 나왔어야 했다.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를 안이하게 바라봤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절차 없이 바로 국정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대응팀이 꾸려지는 올해 말까지 미국의 공세에 손 놓고 있어야 한다.
여야 대선주자 대부분 큰 틀에서 ‘한미FTA 재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이 FTA 재협상을 압박할 경우 우리나라도 당당히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안희정 등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이 재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새로운 협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우리가 과거처럼 국익을 지키는 당당한 협상을 하면 된다”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우리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익 중심의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면 우리도 반대급부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올려 레버리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협상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박근혜 정부 때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전한 통상본부를 다시 외교부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재협상에 부정적이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무조건 재협상·폐기가 아니라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문제가 현실화됐을 때 협정문에 나와 있는 개정협상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최근 미국 공화당의 댄 버튼 전 하원의원과 만나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재협상 요구-논의 착수’ 혹은 ‘부작용 최소화’라는 원론적 수준에서 방향만 제시했을 뿐 전략은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앞서 미국처럼 통상본부를 청와대나 총리실 산하로 격상해 대응 수준을 높이거나 자동차·전자 등 유리한 부분은 손해를 감수하되 서비스 분야에서 이익을 높이는 방향을 고민하자며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찬반을 밝힌 후보는 없다.
그나마 재협상 혹은 신중이란 입장도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과거 지난 2011년 국회 비준 당시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느냐”며 반대했고 농산물·투자자-국가소송제(ISD) 분야 재협상을 주장했다. 안 전 대표도 2012년 대선 때 폐기론에 맞서 재협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유 의원은 1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전 준비는 해야 하지만 우리가 먼저 재협상을 상정해놓을 필요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