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지는 듯하던 ‘러시아 커넥션’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다시 뒤흔들고 있다.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의 접촉에 대한 파장이 이미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로 번진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러시아와 연계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범 초반 트럼프 행정부를 강타한 ‘러시아 커넥션’이 인사 참사를 넘어 제2의 워터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세션스 장관은 2일(현지시간) 법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대선 기간에 키슬랴크 대사와 만나 선거 관련 의제를 논의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수사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당 지도부의 사퇴 요구에 대응한 것으로 앞서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세션스는 우리나라의 최고 법 집행 공무원 자리를 맡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사퇴를 주장했다.
앞서 WP는 세션스 장관이 트럼프 대선캠프에 속했던 지난해 7월과 9월 키슬랴크 대사와 만났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션스 장관이 러시아 대사와 개인적으로 만났던 9월은 러시아가 인터넷을 통해 대선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던 때여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개입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세션스 장관은 지난 1월 청문회에서 ‘캠프 관계자가 러시아와 소통했다는 증거가 나올 경우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러시아와 소통한 적이 없다”고 대답해 위증 혐의가 불거지고 있다.
세션스 장관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회동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선거 기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대화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위증에 대해서도 “(지난해 재직 중인) 상원의원으로서가 아닌 트럼프 캠프의 일원으로 러시아인을 만났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이후 오랜만에 형성된 우호적 여론이 하루 만에 ‘러시아 커넥션’으로 반전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날 계획이 없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폭력사태를 끝낼 수 있도록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해 사태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백악관의 이 같은 대응에도 정국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마저 세션스 장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무조건 방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조사하다 세션스 장관도 수사했다는 보도를 내놓았고 WP는 세션스 장관의 회동 의혹에 대한 최초 보도가 나가기 전인 지난달 27일 법무부 내에서 장관의 수사 불개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매체들도 트럼프 주변 인물이 러시아와 접촉했다는 후속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 중에는 백악관 실세로 불리는 쿠슈너 고문이 지난해 12월 키슬랴크 대사와 만났다는 USA투데이의 보도와 트럼프 주니어가 러시아와 연계된 단체에서 연설 후 강연료로 5만달러를 챙겼다는 의혹 등도 포함돼 있다.
한편 러시아는 또 다시 불거진 러시아 커넥션 파문에 워싱턴을 향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고위 관료와 국회의원을 만나는 것은 외교관의 임무”라며 “(세션스 파문은) 1950년대 미국을 휩쓴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을 연상시킨다”고 힐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