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벌써 한국행 비자 발급이 중단되기 시작했어요. 지금 쇼핑하는 사람들은 한 두 달 전에 예약한 사람들이고 앞으로 한 달만 있으면 한국 면세점에서 단체 관광객 찾기가 어려워 질 것입니다.(중국 단체관광객 가이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에서 기자와 만난 한 중국 가이드는 중국 현지 소식을 이렇게 전하며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이 거부된 사례가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롯데면세점은 이날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일부 매장은 한산했지만 인기 매장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신세계면세점 역시 매장별로 차이는 있으나 중국의 한국 관광금지가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달랐다. 롯데면세점에서 만난 다른 중국인 가이드는 “오전에 신세계면세점을 들렀다 왔는데 벌써 단체 관광객이 좀 준 것 같았다”며 “중국에서는 한 3일 전부터 한국 단체 여행을 막는다는 얘기가 싹 돌았다. 앞으로 일감 얻기가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단체 관광객 20% 축소 이후 이른바 ‘싼커(개별 관광객)’로 버텨온 국내 면세점 업계가 관광금지라는 초대형 악재를 맞았다. 면세점들은 유커 빈 자리를 싼커가 채우면서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 1월과 2월에는 적잖은 성장률을 거뒀다. 관광금지가 시행되면 그나마 면세점을 지탱해온 ‘싼커’의 한국 방문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한국에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이 직접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 설화수 매장 관계자는 “아직 단체 관광객이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다”며 “그래도 장기적으로 여행 규제가 진행된다면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은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 토니모리 매장 직원은 “판촉행사를 많이 진행 중이어서 2월은 1월에 비해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고객의 80% 정도가 단체 관광객이어서 단체 관광이 막히면 매출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 여행사들이 한국행 여행 상품 자체를 만들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며 “고객의 80%가 중국인이고 이 중에 절반은 단체 관광객이다. 단체 관광객 여행이 중단되면 고객이 반토막 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도 “통상 중국 여행사에서 예약 후 실제 한국 방문까지 시차가 한 달 정도 나는데, 4월 매출부터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금지로 국내 면세점 업계는 세계 1위 지위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는 우울한 관측도 나온다. 이번 조치로 국내 면세 업계가 입는 타격은 4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720만 명 가운데 46.8%인 806만 명이 중국인이며 이 중 단체관광 상품으로 입국한 경우는 약 40% 정도다. 항공권과 숙박만 패키지로 판매하는 여행사의 ‘에어텔’을 이용한 고객까지 고려하면 그 비중은 50%로 올라간다. 2015년 기준 중국인 관광객 1인당 한국 내 지출액이 2,391달러(한화 274만 원) 정도이므로 중국인 관광객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면 국내 지출도 96억3,573달러 정도 급감하는 셈이다. 한국 면세점이 유커를 통해 올리고 있는 매출 약 8조6,000억원도 4조원 대로 내려 앉게 된다.
중국의 조치가 단체 관광객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최근 증가하고 있는 싼커(개별관광객)를 유치하면 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조치가 단체 여행 상설상가상으로 지난해 3차로 면세점 4곳이 추가로 선정되면서 서울 지역에 위치한 시내 면세점이 2년 만에 6개에서 13개로 늘며 무한경쟁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사드 배치로 인해 한중관계가 냉랭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은 꾸준히 줄어 지난해 8월 89만5,000여 명에서 12월 54만8,000여 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한국 단체 관광 금지 조치가 장기화 될 경우 국내 면세점은 폐업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된다”며 “면세업계가 고객 국적 다변화에 힘쓰고는 있지만 이처럼 단기간에 중국인 고객이 급감할 경우 버티지 못하는 곳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윤선기자·박준호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