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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폴로지’ 위안부가 아닌 ‘할머니’들로 기억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종합)

역사가 ‘위안부’라 낙인 찍는다 해도, 우리에겐 그냥 ‘할머니’들이 입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납치되고 강제로 끌려간 약 20만 명이 넘는 ‘위안부’ 중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인생 여정이 스크린에 그려졌다.




/사진=㈜영화사 그램/사진=㈜영화사 그램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여전히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심장 깊이 박힌 가시 같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쇠약해지는 건강으로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할머니들의 신념과 의지는 여전히 확고하다.

굴곡지지만 결코 쉬이 쓰러지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을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담아낸 ‘어폴로지’(감독 티파니 슝)가 7일(화) 오후 CGV왕십리에서 언론/배급 시사 및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할머니들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킨다기 보다 그 이후의 영향과 할머니들의 회복력 그리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 영화를 보는 내내 길원옥 할머니의 상처보다는 긍정적인 삶의 의지에 더욱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이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 대표인 윤미향 대표는 “길원옥 할머니의 강인함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같은 느낌이랄까요? ”라며 “길원옥 할머니의 의지가 같은 경험을 했던 많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높여주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25년간 함께 동고동락 해온 “길원옥 할머니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분이시다. 사람과의 관계를 정으로 품으시는 분이다.”며 애정을 표했다. ‘어폴로지’ 감독에게 그 누구보다 먼저 마음을 연 이 역시 길원옥 할머니였다고 한다.

캐나다 티파니 슝 감독이 10년 전 영화 관련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정대협을 찾아왔을 때, 윤 대표는 “경계심이 먼저 들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국내에서도 관련 영화나 논문, 연극을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피로감이 많은 상태였는데, 외국에서 자란 여성이 찾아와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처음엔 할머니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란 의심이 들어 경계를 갖고 거부를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마음을 연 길원옥 할머니를 보며 함께 마음을 열고 이번 영화 제작에 동참했다고 했다. 덤으로 발음이 어려운 티파니 슝 감독을 부르는 길원옥 할머니만의 애칭까지 들려줬다.

/사진=㈜영화사 그램/사진=㈜영화사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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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대표와 길원옥 할머니/사진=㈜영화사 그램윤미향 대표와 길원옥 할머니/사진=㈜영화사 그램


할머니들에게는 여전히,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세계를 돌 동안 한국 정부는 침묵했고, 이렇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류에 저지른 잔혹한 범죄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과 그 책임감을 일본 정부가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윤 대표는 “‘어폴로지’를 꼭 일본에서 많이 봤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란 나라를 저주하거나 분노하는 게 아닌, 오히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힘들게 해 오고 있는 운동이란 걸 알리기 위해 일본에서 꼭 좀 봐주셨으면”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반일 문제가 아닌 마음을 열고 볼 수 있는 사안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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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 현장도 담아냈다.

매주 수요일 12시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최초의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는 세계 최장기 집회로 기록되어 있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가 되는 날을 맞이하여 정대협 윤미향 대표의 진행 아래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설치한 바 있다.

윤 대표는 “매주 수요일 때마다 오늘 집회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간다. 한주에 한번씩이지만 시위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다보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해오다보니 한국 사회 시민들의 시선에서도 달라지는 게 보여지고 있다.”고 했다.

‘어폴로지’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간의 문제를 넘어 중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 지역의 문제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윤 대표는 “동티모르,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대만 등 피해자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폴로지’ 영화가 국내 감독이 아닌 캐나다 감독의 첫 입봉작이란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평화비 설치와 철거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빚고 있고, 할머니들을 올바르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영화사 그램/사진=㈜영화사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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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사 그램/사진=㈜영화사 그램


윤 대표는 “‘어폴로지’는 캐나다 정부가 제작을 맡아주고, 국제영화제에도 출품을 해준 영화이다.”며 “정치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고 예술로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피해자 여성들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윤 대표는 마지막으로 “우리도 저렇게 예술은 예술로 인정하는 문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위안부 문제 역시)그대로 역사로 받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감독이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록한 영화 ‘어폴로지’는 3월 16일 개봉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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