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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공연, 미술 전시회 줄줄이 취소...사드보복 끝은 어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은 중국 상하이 공연을 추진중이었으나 최근 논의가 중단됐다. /서울경제DB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은 중국 상하이 공연을 추진중이었으나 최근 논의가 중단됐다. /서울경제DB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추진으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시·공연 시장도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금지령) 쇼크에 빠졌다.

7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에이콤, 오디컴퍼니 등 연내 중국 진출을 준비 중이던 국내 주요 뮤지컬 제작사들 상당수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창작 뮤지컬 ‘영웅’을 제작한 에이콤은 지난해 중국 상하이 현지에서 쇼케이스를 열고 현지 업체들과 공연 일정을 협의 중이었으나 현재는 논의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상하이 대형 극장과 공연 일정을 협의하고 연내 무대에 올릴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연락이 끊겼다”며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제한 조치에 따른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관계가 악화일로를 겪으면서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등 한국 아티스트들의 중국 공연이 취소된 데 이어 뮤지컬 제작사들의 현지 진출까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브로드웨이 출신 배우들이 출연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영어 버전)의 현지 공연을 준비 중이던 오디컴퍼니도 연내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었으나 현재는 잠정 중단한 상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월드투어팀 공연은 당장 법인 설립부터 난관에 부딪혀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행히 중국 현지 투자사를 통해 준비한 라이선스 작품은 현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중국어 버전의 작품으로 오디컴퍼니가 전면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표적인 중국 문화상품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한 장면 /서울경제DB대표적인 중국 문화상품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한 장면 /서울경제DB


당장 현지 공연 일정을 확정한 작품들이 없었던 터라 가시적인 피해사례가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공연계에서는 한한령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던 상당수 제작사들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승원 HJ컬처 대표는 “최근 1~2년은 국내 창작 뮤지컬의 중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는 중요한 시기였다”며 “이제 걸음마를 떼려던 상황에서 한한령 여파로 상당수 프로젝트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했다.


한한령 여파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공연 분야는 중국 관광객 위주로 관객몰이를 하던 비언어(논버벌)퍼포먼스다. ‘난타’의 제작사 PMC프로덕션은 국내 전용관 4곳 중 중국 단체 관광객 위주로 운영해온 충정로 극장을 오는 4월부터 잠정 폐쇄하기로 했다. 현재로선 2∼3개월간 운영을 중단한다는 방침이지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전면폐쇄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미술 넌버벌 퍼포먼스 ‘오리지널 드로잉쇼’ 상설공연장은 지난 1일부터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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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불똥은 미술계에도 튀는 양상이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자 세계적 컬렉터인 부디텍이 중국 상하이에 설립한 유즈미술관이 오는 9월로 예정했던 ‘단색화’ 전시를 돌연 미뤘다. ‘단색화’는 박서보·정상화·하종현·권영우 등 1970년대 한국의 단색조 회화 경향을 가리키며, 최근 3~4년 해외미술계를 중심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유즈미술관은 개인이 세운 사립미술관이지만 옛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미술관 부지를 상하이시 정부로부터 무상 임대받고 있는 상황이라 사드배치로 인한 한한령을 천명한 정부지침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즈미술관에 정통한 한 미술계 관계자는 “상하이 유즈미술관이 9월에 열기로 한 ‘단색화’ 전시를 전격 연기하기로 했다”면서 “취소를 단정할 수 없지만 언제 열릴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유즈미술관 측은 조만간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컬렉터로 상하이에 유즈미술관을 설립한 부디텍. 지난해 방한해 오는 9월로 예정한 ‘단색화’ 특별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밝힌 바 있으나 최근 전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출처=yuzmuseum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컬렉터로 상하이에 유즈미술관을 설립한 부디텍. 지난해 방한해 오는 9월로 예정한 ‘단색화’ 특별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밝힌 바 있으나 최근 전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출처=yuzmuseum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추진중이던 국공립미술관의 전시는 줄줄이 소리소문 없이 취소됐다. 중국 문화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중국 인민일보가 공동 주최해 올 상반기 경기도미술관과 경남도립·제주도립·수원시립·청주시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 5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시는 전격 ‘폐기’됐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한중 수교 기념전에 대한 논의를 이미 작년 초부터 중국과 협의해 오던 것”이라며 “지난 가을 중국 측이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같이 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해와 사드파문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미술관으로부터 개최 의향서를 받아가는 등 적극적인 태도였던 중국 측이 갑자기 각각의 참여 미술관에 취소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화랑의 시련도 마찬가지다. 중국 진출 3주년을 맞은 학고재갤러리는 지난 1월말 윤석남 개인전을 끝으로 상하이지점을 철수했다. 학고재 측은 홍콩이나 베이징 798지역에 신규 장소를 물색중이라고 밝혔지만 개관 가능성은 미지수다. 상하이에 분점을 둔 아라리오갤러리 역시 사드배치로 인한 한한령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케이옥션의 경우 홍콩에서 연 4회 개최하던 단독경매를 올해부터 전격 중단했다. 이들 갤러리와 경매사의 거래 부진이 사드 후폭풍과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미술품 구매가 다분히 감성적인 결정에 의존하는 만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과 함께 미술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회생한 듯했던 시장이 냉각기에 접어든데다 미술계 ‘큰 손’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의 퇴진 등이 겹친 상황에서 해외시장 만이 살길로 여기고 특히 급성장한 중국을 미래시장으로 여겼던 미술계가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은영·조상인기자 supia927@sedaily.com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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