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50년 전 방콕선언을 시작으로 창설된 동남아의 유일한 지역기구다. 초창기 멤버로는 일명 창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가 있다. 그 이후 브루나이·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미얀마가 가입하면서 현재 동남아 주요 10개국이 아세안 회원국으로 있다. 창설 당시 아세안은 식민지배로부터 갓 벗어난 신생국이었으나 이제는 국제사회의 부러움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지역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아세안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세안은 ‘아시아의 발칸’이라 불리며 분쟁의 위험이 큰 지역이었지만 2015년 말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하는 등 평화적 중재자로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아세안의 달라진 위상은 아세안에 대한 강대국의 큰 관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세안은 2016년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강대국 정상들과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1년 만에 아세안 10개국 순방을 마치고 이제는 두 번째 아세안 순회를 하고 있다. 올해 아세안과 인도는 대화관계 수립 25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를 갖는다.
이뿐 아니라 아세안은 2조4,000만달러의 세계 6위 경제규모와 6억3,000만명의 세계 3위의 인구를 가진 거대 경제 지역이자 불확실한 세계 경제에 성장동력으로서 역할도 하고 있다. 아세안은 우리의 교역·투자·건설 분야 2위 대상 지역이자 우리 국민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세안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실질 파트너다.
아세안 10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드라마·대중가요·한식 등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스레 한국 제품 수요도 높아지고 있고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아세안’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온 동남아 이주노동자·며느리·유학생 등에 대해 혹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세안은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세안을 가장 많이 찾는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적인 문화유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발리, 태국의 푸껫, 필리핀의 세부는 열대우림의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등 아세안은 다양한 세계 국보급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매년 기록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아세안에 대해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2014년 12월 부산 한·아세안 대화상대국 수립 25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 당시 한·아세안 리더들은 아세안 문화원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아세안 문화원이 올가을 부산에서 공식 개원되면 한국 국민이 다양한 아세안 문화를 만나고 한·아세안 예술인들이 교류하는 장이 될 것이다.
또 올해가 아세안 창설 50주년이자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이다. 올 한 해 동안 한국과 아세안에서는 한·아세안 국제관계조망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학술회의는 물론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 공연, 한·아세안 영화제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아세안은 비슷한 성격의 지역연합체인 유럽연합(EU)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합의와 내정불간섭이라는 아세안의 독특한 의사결정 방식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EU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는 달리 조용한 진전, 겸손한 성공 스토리를 다져가는 밑거름으로 작용되고 있다.
아세안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기조 아래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러한 아세안을 우리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가까운 벗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서정인 주 아세안대표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