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을 일제히 주요 기사로 다루며 오는 5월 치러질 한국 대통령선거 결과와 정계 지각변동이 자국과 관련된 현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평화로운 시위를 시작으로 일궈낸 탄핵에 의미를 부여하며 “한국 민주주의 진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날 탄핵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김정남 암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발 등 동북아 현안이 복잡하게 맞물린 국면에서 이뤄진 점에 주목하며 한국의 정치상황이 향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박 전 대통령은 보수의 아이콘으로 북한 핵 도발에 대항해 강경책을 사용하는 미국의 정책에 동조했다”며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면 미국과의 대북 정책공조를 재검토하고 아시아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미국에 경고를 보내는 중국과의 긴장을 해소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이례적으로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자회견 생방송을 중단하고 헌재의 탄핵 결정 과정을 동시통역 생중계로 30여분 동안 보도했다. 일부 매체들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질 조기 대선을 통해 조만간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사드 배치가 중단될 가능성을 조망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신경보는 논평에서 “박근혜를 이긴 것은 헌재나 국회가 아니라 민심”이라고 평가한 뒤 조기 대선과 차기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사히·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호외까지 발행하며 박 대통령 탄핵을 상세히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새 대통령 선출 이후 위안부 소녀상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관계가 한층 악화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석기사를 쏟아냈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국제적 합의는 당연히 계승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라는 모테키 도시미쓰 자민당 정조회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차기 정부를 향해 박근혜 정부와 협상한 위안부 합의 이행을 압박했다.
외신들은 또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대통령 탄핵 이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NYT는 이번 사건이 “민주주의의 진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표현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도 “민주화 30년 만에 일궈낸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5월 대선 전망, 유력 후보들의 주요 정책을 상세히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경제를 수십년간 지배해온 재벌을 해체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WP는 “문 후보는 보수정권에 반해 대북 회유책을 채택하고 있다”며 “당선되면 ‘햇볕정책’이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독재자의 딸’로 주목받았던 박 전 대통령의 극적인 인생을 조명하기도 했다. CNN은 ‘한국 정치적 공주의 몰락(Downfall of South Korea’s political Princess)’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열 살에 청와대에 들어온 뒤 이날 쫓겨나기까지 박 전 대통령의 삶을 소개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연유진기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