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오바마, 대선 6개월전 인사·정책 물밑 준비…2010년엔 '후보시절 인수 준비' 법으로 명시

[朴대통령 탄핵] 해외선 리더십 공백 어떻게 대비하나

지난 2008년 11월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와 함께 차기 경제팀 인선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 통신지난 2008년 11월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와 함께 차기 경제팀 인선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 통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로 60일 내 대선이 치러지고 그 다음날 정권이 바뀌게 돼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한 해법이 요구된다. 특히 대선 전 인수위원회를 구성하는 미국을 벤치마킹해 우리도 서둘러 인수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대선(11월4일)을 6개월여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과의 치열한 경선 속에서도 선거캠프와 별개로 정권 인수팀을 구성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미국진보센터라는 싱크탱크를 운영하던 존 포데스타를 좌장으로 전문가와 측근이 골고루 포진한 인수팀은 인사, 정책, 입법전략, 경제위기 극복을 물밑에서 준비한다. 오바마는 온·오프라인에서 머그컵, 배지, 자동차 스티커 등을 3~5달러씩에 팔아 마련한 선거자금 40만달러를 투입했다.

오바마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와 냉전기 미국의 슈퍼파워를 보여준 로널드 레이건(1981년부터 8년간 재임)을 연구하고 있었다. “정권 인수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계속되고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속에 이뤄져 대공황 와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권을 인수한 이래 75년 만에 가장 힘들고 폭발성을 띠는 작업이 될 것(뉴욕타임스)”이라는 평가가 나오던 때였다. 앞서 레이건은 선거캠프와 별도로 인수팀을 비밀리에 꾸려 예산을 점검하고 경제회복 등 정책 우선순위를 정했다. 미국은 1960년(존 F 케네디 당선)부터 대통령직 인수 작업을 정부가 지원하기 시작했다.


‘변화’와 ‘희망’을 내세워 당선된 오바마는 2009년 1월20일 취임까지 77일간 정식으로 인수위원회를 운영해 부처 업무와 예산 파악, 백악관 참모와 내각 인선, 글로벌 금융위기와 전쟁 해결, 오바마케어 등 핵심 국정과제를 차근차근 준비한다. 이때 정부 지원금 530만달러 외에 선거자금 400만달러를 투입한다. 당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지도는 바닥을 기었지만 대선 전부터 대통령령으로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한 대통령직인수협력위원회를 마련해 양당 캠프에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현직의 의무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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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아예 2010년 ‘선거 전 대통령직인수법’을 제정해 정당이 후보 시절부터 정권 인수를 준비하도록 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각각 대선(11월8일) 이전인 5월과 8월에 인수위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 73일간의 정식 인수위 기간도 거쳤다.

이처럼 대선 전 수개월 전부터 정권 인수를 준비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오는 5월9일께 궐위(闕位)선거 다음날 오전6시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 확정의결 즉시 차기 대통령이 깜깜이 취임을 해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안보·외교·통일팀과의 동거정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북핵 위기에 따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중국의 도를 넘는 경제보복,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 미중 간 첨예한 갈등이라는 초불확실성에 전략적으로 대처하기 쉽지 않다. 적폐 청산이라는 촛불민심과 구질서 존속이라는 태극기세력 간 갈등과 분열 치유도 어려운 과제다. 국내외 위기상황에서 인수위도 없이 새 정부 정책 기조와 우선순위·로드맵 설정,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회·경제구조적 변화에 대응한 정부조직 개편, 올해와 내년치 예산 협의, 청와대와 내각 인선 등을 할 때 혼란이 우려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은 67일 안팎의 인수위 기간을 통해 인사와 정책 등 새판을 짰다. 국민의정부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대선 직후 인수위 외에 비상경제대책위원회와 노사정협의회·정부개편심의위원회도 운영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대통령의 성공, 취임 전에 결정된다’는 책을 쓴 이경은씨는 “대선 전 인수준비 작업을 하면 ‘벌써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난타당할 수도 있지만 엄중한 비상상황을 고려해 후보들이 대선 전 인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 전 인수준비위를 꾸릴 수 있게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면 3월 임시국회 본회의(16·17·28·29일)에서 통과돼야 하고 이럴 경우 인수위가 그나마 30~40일이라도 가동되는데 여야 대치 구조에서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대선 전 인수위 설치법을 제출한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가 정권을 잡든 국정 공백과 인사 난맥상을 피하려면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선 후보에게 정부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 인수준비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송기복 청주대 정치안보국제학과 교수는 “이번에는 국가적으로 특수하고 불확실성이 커 선거공영제와 유사한 형태로 후보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책임 있게 국정기획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법적 인수준비위 구성이 불발되면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정의당(의석 순) 중 합의가 이뤄진 곳이라도 정책위와 상임위 전문위원, 싱크탱크, 외부 전문가로 자체 인수준비위를 구성하고 정부에 업무 현황과 예산 실태, 필요 시 인사검증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게 차선으로 꼽힌다. “국민들은 자칫 첫걸음부터 길을 잃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밝힌 정세균 국회의장이 여야와 협의해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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